글 수 41
정윤경
조회 수 : 68
2017.12.03 (01:24:50)




        크리스말로윈



                




아래 기사는 장개석이 저지른 1927년 상해 대도륙 사건의 희생자가 누구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핵심 기사입니다. 

1927년 4.16 동아일보


임시정부 해산 19270416.JPG


기사 요점 ( 백숭희씨 좌파 취체 엄중 - 상해임시정부에 해산명령 / 상해임시정부에 대하여 적화의 색채가 농후하다는 이유로 해산을 명하고 군대를 파견한 까닭에 임시정부 내의 사무원 전부는 도주하고 장개석이 임명한 우경파의 상해행정위원회가 동 사무소를 점령하고 사무를 보는 중이더라.)


4.12 쿠데타 사건은 1925년 3월 31일, "이승만에게 일언을 고한다"는 글과 함께 이승만을 탄핵한 박은식 대통령의 죽음을 시작으로 본격화되기 시작합니다.


1925년 3월 31일 독립신문(이승만군에게 일언을 하노라)


이승만 탄핵 19250331.JPG


아래는 1925년 6월 1일 기사인데, 이때부터 상해는 계엄 상태에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에 느닷없이 상해에 적화 세력들이 출몰하여 선동을 하여서 파업이 극심해지기 시작하고 배외 운동까지 격렬하게 벌어지면서 각국 군대는 물론 일본 군대까지 상해에 상륙하기 시작합니다. 


상해 계엄 1925.06.01.JPG



상해 대도륙이 일어나기 직전 아래와 같은 기사들이 등장합니다. 상해총정치부가 폐쇄되고 부원은 전원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상해의 치안은 백숭희가 맡게 되는데, 후일 백숭희는 이승만이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 중국의 국방장관으로 이승만 환영회에 참석하죠. 


상해 총정치부 폐쇄.JPG



상하이쿠데타.JPG

상해 쿠데타1.JPG 상해 쿠데타2.JPG


중국 역사에서는 이 사건을 "적화 세력을 도륙한 것"이라고 하는데, 실제 중국의 적화 세력은 이승만의 구미위원회의 지원을 받던 이잠(여운형). 장개석 휘하의 백로군이었던 모택동, 그리고 국민당원이었던 주은래 등이 실질적인 공산 세력이었습니다.  중국 근대사 기록을 보면, 이들 세력은 늘 장개석 이승만과 친분이 두터웠습니다. 


더 놀라온 것은, 아래 기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장개석의 절친이자 청나라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긴다는 대계도(그 아들은 나찌 군관학교 졸업)가 1942년 이승만과 함께 나란히 한중문화협회 임원(명예이사)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당시 한중문화협회의 한국 임원은 김구, 조소앙, 이청천, 김약산이었는데, 김약산은 그 당시 공산주의 활동을 벌이던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또 풍옥상은 소련 공산당의 지원을 받아 적화 쿠데타로 북경을 점령한 인물이죠. 그리고 주은래는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군의 좌파에 속하는 인물이었으니,  그는 일본 공산군인 백로군에 가까운 인물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승만 대계도.JPG

주은래.JPG 


제가 굳이 이렇게 애써 상해임시정부 세력이 적화 세력이 아니었음을 강조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은 중국 신문의 기사 때문입니다. 아래 기사에서는 상해 쿠데타를 문명적 대청세(청소)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4.12 대도륙 사건은 모택동의 문화혁명을 빙자한 중국 역사 청소의 표본이 된 첫번째 대학살 사건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https://freewechat.com/a/MzAxMjI4Mzg2OQ==/2650249650/7


그런데 위 글에서는 이 청소의 대상이 주은래와 같은 적화 세력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솔직히 중국 신문을 보면, 역사 왜곡이 너무도 심해서 제가 굳이 중국어로 된 신문을 번역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너무 많습니다. 다만 중요한 사진 같은 것을 종종 발견할 수 있어서, 사진 캡쳐를 위해 위 자료를 들쳐보았습니다. 이야기 속에 3천명을 학살했다는 이야기가 수시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무려 3천명이 넘는 사람들 모두 일일이 칼로 도륙하자면 적지 않은 노동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다보니, 공개 도륙된 사람들 뿐 아니라 그 중에는 집단 학살된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자료들을 뒤지다 아래와 같은 동영상 속의 사진을 발견하였습니다.


상해 대도륙.JPG  


1920년대 후반 사진인 듯한데, 모두들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나와 다소곳이 다가올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ㅠㅠ......


          사랑하는 이여 내 죽으면                                             하늘나라 우리님


                    

        

                  

(계속)


아래 기사는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언제부터, 어떻게 공산당 세력으로 치부되기 시작하였는가 하는 부분을 알 수 있게 하는 핵심 뉴스입니다. 


1925년 6월 19일 시대일보


인산당일.JPG


위 신문 기사의 여운형 관련 부분을 확대한 것입니다. 공산주의자 여운형이 마치 상해 임시정부의 최고 참모인 것처럼 묘사되고 있습니다.(이 당시 상해의 진짜 독립운동의 거두 여원홍은 일본 경찰에 감금된 상태였고, 손문 역시 간장병으로 죽은지 몇달 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


여운형이 최고로 책동.JPG


아래 기사들은 이 사건이 있은 지 1년 후 시점 일본 경찰에 감금되어 있던 여원홍과 관련된 기사로, 기사의 이징오씨는 양자강 유역의 화교라고 합니다. 조선인 화교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징오.JPG

<관련자료>

여원홍 조선.JPG



1927년 4.12 장개석의 상해 대도륙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여운형(이잠/ 동아일본 상해 통신원 / 이승만의 구미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활동하였으며 김규식을 각하로 존칭하던 인물)은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게 됩니다. 물론 그와 관련한 사진들이 국내 신문, 특히 동아일보에 대문짝만하게 실리는데, 내용을 읽어보면, 여운형 이야기인지 독립운동 거두 여원홍 이야기인지 도무지 구분이 안갑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전해지는 여운형 관련 기록물들을 보면 여원홍과 관련된 역사 기록들이 마치 여운형 자신의 일처럼 기록된 부분들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진2.JPG 사진6.JPG 사진8.JPG




신문 기사를 보면, 당시 여운형이 서울로 압송될 당시,  독립운동의 거두 여씨의 동생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동생 여운홍씨가 언론에 등장하여 여운형의 신분을 확인시켜주었다고 합니다. 당시 여운형은 용산역에서 내리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여운형을 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조용히 서울역에서 내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래 기사는 중경 대공보 1945년 5월 경 기사입니다.



작근 려씨.png


"한국 전도"라는 제목 하에, 조선임시정부 주석 이종민, 작근 여씨, 중한인민동맹회주석 한길수 라는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여기서 한길수 씨는 만주에 살고 있는 300만명의 한국인을 버려버린 채, 현 지도상에 표시된 한국으로 독립하는 것을 끝까지 반대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기사는 임시정부 주석의 이름이 한자로 이종민으로 적혀 있는데, 이승만 이외에는 달리 임시정부 주석에 이름을 올릴 수 없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승만이라는 이름을 한자를 빌어 이두식 표현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 아래 작근 여씨라는 글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작(昨)은 어제 작이고, 근(謹)은 삼갈 근. 근조(謹弔)라는 의미로 이해되는데, 이승만 이전에는 삼가 여씨가 한국임시정부의 주석이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여(呂)씨 성을 쓰는 여운형의 경력을 보면,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난 후, 김규식을 각하로 모시며 수행비서처럼 따라다녔고, 조선 적화 운동에 적극 앞장을 선 인물이며, 그로 인해 체포된 후 서대문 형무소에서 형기를 마치고 조선일보 사장까지 낸 인물로, 저 신문기사가 실릴 당시까지 단 한번도 한국 임시정부 주석으로 불릴만한 위치에 있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이종민이 이승만의 이두식 표현이라면 여(呂)씨 역시 한자를 빈 여(黎)씨의 이두식 표현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제 생각에 한국에서 呂씨가 마치 黎씨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을 보다 못한 중경 대공보의 기자가 여운형이 여원홍이면 이종민이 이승만이다라는 식의 표현을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그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론에 철저히 속아서 여운형을 진짜 독립운동의 거두 여원홍이라고 철썩같이 믿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 좌측 사진은 고종 장례식 사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측 사진은 여운형의 장례식 사진이라고 합니다. 60만명의 추모인파가 몰려 애도하였다고 하네요.


고종 장례식.JPG 여운형 장례식.PNG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

 


                                                                                                                                                                           






                                                   그대가.JPG 





191996일 독립신문

 

4일 하오 2시 반 개회 부의장 정인과씨 승석하다

 

(의장) 여운형(여원홍)은 정무위원의 출석을 요구한 후 말을 잇기를, 어제꺼지 헌법 초안을 두 번 읽었으니 오늘은 총괄하여 질문코저 하노라. 이전 임시헌장 제3조의 남녀귀천빈부등의 구절과 제7, 8조를 어떤 이유로 삭제하였으며 제4조 신교의 자유를 제7조로 옮겼나뇨. 신익희(별칭은 왕방평(王邦平)·왕해공(王海公), 왕방우/ 현재 중국의 후손들도 왕씨 성)씨 등단하여, 어제도 답변한 바이어니와 3조에 대하여는 현금 사회에 계급은 남녀귀천빈부보다도 더 현우(賢愚)의 계급이라든지 기타 종종의 차별이 있는 고로 남녀귀천빈부 등의 구절을 삭제함이 가하고 국제연맹에 가입하다는 조목은 어제 답변과 같이 우리 이해를 따라 자유로 가입하던지 않턴지 하지 헌법조목에는 있을 필요가 없고, 8조 생명형 신체형과 공창제 폐지라는 조목을 삭제한 것은 생명형에 관하여는 우리 정부에 불가불 필요하겠는 것이겠으나 신체형은 현금 각국에 문명하다는 나라에는 이미 폐지되고, 국가를 성립치 못한 수개의 약한 민족이 사용하는 바인즉 우리의 국가에 대하여는 반히 신체형폐지라는 것을 헌법에 명서하는 것이 수치인 까닭이요,...

여운형(여원홍), 장붕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헌법 79조 부활은 35로 부결되다.

 

후에 조완구씨가 황실우대건을 삽입하는 의견을 제출하니 그 이유를 씨는 술하기를, 민주국 헌법에 황실을 운운함이 불가하다 함일지나 이는 우리민족 통일의 한 방침이 되리라... 여운형씨 반대하여 왈 혁명은 철저하여야 할지라 집정자의 은혜를 운운함은 어리석은 말이오 그렇다고 나는 황실을 벌하자 함은 아니라. 여씨와 조씨 간에 논전이 있은 후 투표하여 8대 6으로 수정가결. 이로써 재결 종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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