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3
정윤경
조회 수 : 72
2017.11.07 (11:00:20)


  

  이 사이트는 불면증,  발레리노,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 사이트의 내용과 연결되어 있음을 공지드립니다.  


  아래 캡쳐된 사진은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 편에 올려드린 용진가의 가사 원본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자료로, 한 음반회사 자료실에서 발견된 광복군의 유품이라고 합니다.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santaclausly/11793663 


  광복군 유품.png

   용진가.png



                       못해



                       


광복군.png




 위 사진의 김구 주변을 확대한  모습


광복군1.png 

위 사진의 광복군의 모자 상징과 

중국역사상 최악의 한간(漢奸 /  중국의 이완용) 으로 평가받는 장개석의 오른팔 왕정위汪 精衛 군대의 모자 상징

사진출처 :  http://blog.joins.com/media/index.asp?page=16&uid=lless&folder=75&viewType=1


왕정위.JPG




 왕정위汪 精衛와 나찌 (사진출처 :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99%95%EC%A7%95%EC%9B%A8%EC%9D%B4


왕정위 나찌.JPG







         남자가 사랑할 때



                 




  


   이승만 장개석.JPG   이승만 장개석1.JPG 

       사진 출처 : 대통령 기록관                          

                                                                                                               


키신저 리커창.JPG 리커창 키신저.JPG

사진출처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620888&code=11142600&cp=nv           사진출처 http://www.edaily.co.kr/news/news_detail.asp?newsId=01525206602747256&mediaCodeNo=257




   사진들에 등장하는 이씨들이 사실은 같은 고향 사람인지 아닌지 저는 이 자리에서 그걸 콕 집어 말씀드리기 힘이 듭니다. 다만, 위 이씨들이 중국이나 한국에서 워낙 유명한 공인이 되다보니, 그들 성씨에 대한 추정을 해볼 수 있는 적지 않은 자료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어, 어느 정도 추정이 가능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위 이씨들의 성씨를 추정하기 전에 먼저  이승만이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을 수여하고 있는 장개석이란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과정이 꼭 필요할 듯하여, 관련된 자료들을 올려드리려고 합니다. 


     장위국.JPG                            장위국 나찌.jpg

     위 첫번째 사진 장개석 뒷편의 우측 인물은 장위국으로 장개석의 둘쨰 아들(먼저 이들이 쓰고 있는 모자가 일본 정권의 수반으로 나찌 요원들과 어울리며 중국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군인 왕정위 및 대한민국 광복군들이 쓰고 있는 모자와 똑같다는 점을 주목하셔야 할 듯합니다.)

   위 사진의 장위국은 장개석의 양자이며 , 모친이 일본 여인이라고 전합니다.(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9E%A5%EC%9B%A8%EC%9D%B4%EA%B6%88) .  

   또 장위국의 진짜 부친은 중국의 정치인 다이지타오(대계도, 戴季陶)라는 설이 공공연하게 전파된 상황입니다.  대계도는 장개석의 절친으로 일본군이자 중화민국의 육군으로 그의 호(號)는 톈처우(天仇, 천구), 푸쿵(不空, 불공), 푸둥(不動, 불동)인데 그 가운데 톈처우(天仇)라는 호(號)는 "다이촨셴(戴傳賢) 자신은 청(淸) 제국과 불공지천대원수(不共地天大怨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대한 광복군의 독립군가에 청제국의 영토였던 요동과 만주 지역을 토벌해야 할 대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도 중국 국민당 당수 장개석과 그의 절친인 '다이촨센'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의 이와 같은 심사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또한 대한 광복군가에 등장하는 "여진족을 원수쳐보세" 라는 가사 부분 역시 청제국과 불공지천대원수인 장개석의 절친이자 장개석의 아들의 아버지인 다이촨센이라는 인물의 톈저우라는 호와 매우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이와 같은 부분들은  중국의 남웅주기항의 이씨 종사 기둥에 새겨진 동이(동쪽 오랑캐 / 부여, 발해, 청나라)에 대한 경계의 문구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두번째 사진은 장위국의 독일 군관학교 시절의 나찌 복장 사진 

(장위국은 1937년 나찌 독일 육관사관학교 졸업. 1942년 이후 미국 군부대 소속으로 활동하였고 1959년 미국 합동참모대학교를 졸업한 것을 마지막으로 미국 생활을 끝냄. 최종 계급은 중화민국 육군대장. 1987년 대한민국 서울  경희대학교로부터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은 바 있음.) 




여기서 먼저 장개석이 자기의 절친의 아들을 양자로 들여 그를 독일 군사학교에 입학시킨 경우에 대해서 좀 살펴봐야 할 듯합니다. 


사실 조선시대의 경우를 보면 이씨 왕가에서는 왕자(왕녀)를 여염집의 시양자(侍養子/ 수양)로 보냈던 전례들이 기록으로 있습니다. 가령 조선 초기 '세종'으로 지칭되는 인물의 막내 아들 영응대군의 경우, 세종이 특별히 총애하였는데, 영응을 수양아들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던 듯합니다.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영응대군은 이순몽이라는 인물과 노회신이라는 인물의 수양아들이 되었던 기록이 있는데, 이 두 사람 모두 재산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가령 노회신이라는 인물의 경우, 그의 후처 김씨가 바라는 바(?)가 있어 영응대군을 수양아들로 삼았다고 하는데, 노회신과 김씨가 죽자 그 많은 재산을 영응대군 부인 송씨가 전부 차지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성종 22년 12월 14일)  그런 이유 때문인지 영응대군 사후인 중종 2년 7월 19일 기록을 보면 "영응대군 부인의 부(富)가 한 나라와 견줄 수 있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죠. 


세조 반정 이후 조선 왕가의 시양자제도는 꼭 큰 부자가 아닌 경우라도 특별히 공이 많은 인물의 집에 자식을 양자로 보내서 그 집안과 한 가정을 이루는 방편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던 듯합니다.  가령 세조 반정으로 폐위된 단종(노산군)의 경우 정미수(鄭眉壽)란 인물을 시양자로 삼게 되는데, 정미수의 아내가 노산군의 제사를 받드는 대신 그 집과 전답과 노비를 전부 물려받게 된다는 기록이 등장하죠. (단종은 비록 폐위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한때는 조선의 왕! 그 가진 재산과 전답이 어마어마 하였겠죠. ) 그리고 이 시기 이후 정씨 성이 왕실과 관련된 기록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하죠, 이런 걸로 보면 정미수는 세조 반정에 공을 세운 정인지 집안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인물이 아닌가 하는 추정이 얼마든지 가능해집니다.    


그렇다면 장개석의 절친이자 그의 수양 아들의 아버지 대계도(다이촨센)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대계도는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닌 듯한데, 인터넷 검색으로는 그가 불교 지도자였다는 정도만 확인될 뿐입니다. 또 한 인터넷 기록을 보면, 그가 일본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대한민국의 경희대학교에서 중국 군인이며 일본인이자 청나라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고 있는 대계도의 아들에게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는 기록이 좀 어리둥절합니다.... (이와 관련된 소소한 내용들을 캐고 들어가다 보면 책을 한권 다 써도 모자랄 상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그 때가서 한번 되짚어보도록 하죠.)


문제는 위 위키 백과에서는 대계도를 일본군이자 중화민국 육군이라고  설명하는데, 중일전쟁이 계속되고 있던 상황에서 어떻게 일본군이 중국군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당연히 생겨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의문은 기존의 역사학자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왜곡하고 있는 장개석에 대한 잘못된 역사 평가 때문에 생겨난 오류로, 이를 바로잡게 된다면 그 모든 의문이 해소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동시에 장개석의 군대와 한몸처럼 움직였던 대한 광복군에 대한 역사 평가도 새롭게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아래는 장개석의 군대와 관련된 중요한 실제 역사 기록들입니다.

사진 출처 :  http://raccoonwagen.tistory.com/791


중국 국민군.JPG 중국 독일.JPG


그런데, 위 사진이 실린 블로그에서는 중국 국민군이 독일군 군복을 입고 독일과 우방이었던 일본과 교전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제 생각에 중국 국민군이 독일 군복을 입고서, 독일과 우방인 일본과 전쟁을 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처럼 보여집니다. 오히려 위 사진은 1943년 국민군 모자를 쓰고  일본 군대를 자기 군대인양 시찰하고 다니며 독일 나찌와 회동을 하던 왕정위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1930년대 중반 이후 장개석이 우방국 독일과 계약을 맺고 독일로부터 무기를 제공받고 있엄음은 아래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장개석 독일1.JPG

독일이 장개석에게 독가스를 공급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독일 공사가 이를 부인하는 성명을 내었다는 기사입니다. 위 기사를 통해 장개석이 (누군가와의 전쟁 중에) 독가스를 사용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게 되는데, 1937년 발발했던 중일 전쟁 이전, 또 일제의 만주 침공이 이루어진 만주사변이 일어나기 이전인 1930년 이전, 장개석이 독가스를 사용하여 대량의 인명을 살상할 정도의 큰 전투가 있었던 큰 사건이라면 장개석의  4.12 상해 쿠데타 사건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한 중국 언론에 의하면 이때 장개석 군대가 죽인 인명이 수천에서 심지어 수만을 넘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크리스말로윈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볼 예정입니다.


장개석 독일2.JPG


장개석이 공산군 토벌을 위해 독일 명장을 중국으로 초빙하였다는 기사들입니다. 


장개석 독일3.JPG

위 기사는 장개석이 독일 장군을 초빙하였는데, 일본에 대한 군비 강화가 그 이유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개석 독일4.JPG


장개석과 독일과 계약이 이루어져. 중국 운남에서 독일군대가 장개석의 감독하에 융켈기를 제조하기 시작하였다는 기사입니다. 


장개석 독일5.JPG


장개석 군대와 독일간에 일억원 차관의 밀약이 성립되는데, 그 밀약은 독일 군수품의 중국 대량 공급의 협정이라고 합니다.  

(이 모두 장개석 아들이 독일 군사학교를 다니는 기간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위 기사

          들에서는 장개석이 독일과 군사협정을 맺고 독일 무기를 대량구매하는 이유가 중국 공산당 토벌 혹은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실제 역사 기록을 보면, 장개석은 늘 일본과의 화친을 주장해왔고, 그의 주요 활동 내용으로는 중국에서의 배일 행위를 근절시키는 데 온 군사력을 집중하고 있었다는 기록만 산더미같을 뿐, 당시 신문 기록에서 그가 실제 일본과 각을 세웠던 기록은 단 한줄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얼마 전 중국에서 장개석의 군대를 중국군으로 인정하지 않고 일본군이라고 단정지어 보도한 자료가 있어 올려드립니다. 유투브에 올라온 뉴스인데 중국이 독일 군모를 쓰고 있는 군인을 일본군이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 시기(1939년) 중국 땅에서 중국 군모를 쓰고 활보할 수 있는 군대는 일본군이 아니라 바로 중화민국 국민군을 자처하고 있는 장개석의 군대 외에는 없었다는 것이죠. 



                  일본 독일.JPG


                     YTN.  2014.7.14

                               





불과 

      몇년 전, 중국 정부에서는 위 사진의 독일군 철모를 쓴 군인을 일본군이라고 설명하였다고 하지만, 허다한 역사 기록들은 위 독일모를 쓴 군인은 바로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 군대였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 : http://mizibooks.tistory.com/105

장개석 직계.JPG


도대체 저 군인은 정말 중국 국민당군이었을까요? 아니면 사실은 일본군이었을까요? 어떻게 이와 같은 말도 안되는 혼선이 생긴걸까요? 


제 생각에 이와 같은 혼란이 어느정도 정리가 되면 분명 조선의 광복군에 대한 성격 규명도 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먼저 저는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어서 관련 자료들을 열심히 뒤졌는데, 제 짐작에 딱 맞아떨어지는 사진을 몇장 발견하였습니다.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pzkpfw3485/2244367 )

일본군.png 

  

 

 사진출처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worldwar2&no=100441

일본군2.JPG


위 첫번쨰 사진은 1937년 사진이라고 하는데,  일본 군모를 쓴 병사들 틈에 독일 군모(사진 제일 좌측)를 쓴 병사가 나란히 서있는 모습입니다.  위 블로그에서는 이 사진을 설명하면서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힌 중국군 포로가 독일 철모를 쓰고 일본군의 괴뢰군으로 전락되어 자국군 공격의 선봉에 서서 중국인 동족 병사들을 겨누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아래 사진의 경우 일본군이 독일군모를 포획해서 쓰고 다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적군의 군모를 쓰고 적군과 전투를 벌이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런데 장개석 군대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이 사진들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독일에서 수입한 군모와 총을 배급받은 중국 장개석의 국민당 군대는 자발적으로 일본군과 한편이 되어 중국인 동족 병사들에게 총을 겨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동시대에 일본군이기도 하고 중국군이기도 한 인물들이 수두룩하게 많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파란


                    


우리나라 근대사를 보면, 일본군 중국군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와같은 혼선은 일본군과 한국 광복군에게서도 똑같이 발견되고 있는데,  아래 두개의 기사를 통해 다소나마 그 구체적인 진실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첫번째 기사는 1940년 9월 25일 구망일보 기사입니다. (기사 제목은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성립 기념식 거행)


한국 광복군 성립 기념식.png


위 기사의 밑줄친 부분 중, 김구의 간략한 치사와 한국광복군총사령 이청천 장군의 약력에 대해 아래 박스안에 중요 부분만 발췌하여 보았습니다.

  

"대회주석을 맡은 金九 씨가 치사에서 항전을 영도하고 있는 중국최고통수  위원장에 대한 특별한 감사의 뜻을 표시하였다 .... 중한 두 나라의 관계는 이와 입술처럼 밀접하다중국항전이 성공을 거두는 날이 바로 조선혁명이 성공하는 날이다."

 

한국광복군총사령 이청천 장군 약력 : 일본 육군사관학교 보병과를 졸업. 이후 일본군에 복무하며 대위 때에는 (일본군으로)靑島(청두) 전투에 참가하였다후일 일본군대를 떠나 요녕성 유하현(柳河縣) 소재 한인이 설립한 신흥군사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34세에 고려혁명군사관학교 교장을 맡았다이후 정의부 중앙위원군사부장 겸 조선의용군사령을 맡아 군대를 이끌고 압록강 연안 각지를 전전하며 전투를 지휘하였다..




위 내용을 설명드리기 전에 저 당시(1940년 9월) 중화민국의 최고 통수는 충칭에 있는 대만 출신의 임삼 주석이었음을 다시 한번 말씀드려야 할 듯합니다. 그런데 위 기사의 김구는 나찌주의자 장개석에게 줄곧 중국 최고 통수라는 호칭을 부여하고 있는 부분은 눈여겨 볼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 한가지는, 한일합방 조약과 우리지방산업부흥 msn010.gifhttp://saminbon.com/xe/946112msn010.gif 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기적으로 위 광복군이 결성(1940년 9월)되기 바로 전 달인 1940년 8월은 각지 청년이 보내온 황국신민이 될 것임을 서약한 글을 새긴 기둥이 일본 함흥신사 내에 건립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들 청년들은 이씨 조선의 신사 앞에서 내선일체의 근본 이념에 따라 창씨 뿐 아니라 일본 국민의 정신을 체득할 것을 다짐한 부류의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만약 이 시기 일본군이면서 한국군, 혹 중군군이 될 수도 있는 경우라면,  위 함흥신사에 황국신민이 될 것을 서약한 아세아 각 지역의 사람들의 경우가 이에 해당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위 기사에 등장하는 이청천 장군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는 영락없는 일본군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날 일본 군대를 떠나서 한인이 설립한 신흥군사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고 합니다. 또 불과 34세의 나이에 고려혁명군 사관학교교장을 맡았고 조선의용군 사령을 맡아 군대를 이끌고 압록강 연안 각지를 전전하며 전투를 지휘하였다는 것이죠. 


일본군이었던 이청천이 조선의용군 사령관으로 군대를 이끌고 압록강 연안을 돌면서 항전을 하였다면 그 항전 대상이 과연 누구였을까요? 


이와 관련하여서는 먼저 위 신흥군사학교의 교가로 불렸다는 용진가의 음절이 일본 군가와 똑같다는 부분, 이 용진가에서 같은 동족인 여진족을 원수로 무찔러야 할 대상으로 규정짓고 있다는 부분에 더하여 이왕가의 인물로 알려진 이승만과 이청천의 관계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그 이유는 일본에 주욱 머무르던 이왕가의 왕이 한번씩 조선 땅을 밟을 때마다 반드시 향군(鄕軍)을 방문하여 격려하였다는 기록이 다수 발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왕가가 지원하던 향군과 광복군 사령관 이청천이 교사로 지낸 신흥군사학교가 어떤 관계에 놓여 있었을까 하는 의문은 이청천과 이왕가의 인물로 알려진 이승만과의 관계 규명을 통해 보다 명확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래 기사는 이승만이 1947년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던 중 중국 남경에 들렀을 당시의 행적을 소개하고 있는 기사입니다. 


민중일보1947년 4월 24일
기사제목 : 중화 4억만의 경앙리(경배하고 우러르는 곳)에 ㅡ 각계 요인 이박사 환영연 성대


민중일보19470424 1.png

민중일보19470424 2.png

민중일보19470424 3.png


 위 기사는 1947년 4월 이승만이 중국에서 개최된 "이박사 환영연"에 참석하였을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글입니다.  이승만이 중국에 도착하였을 때부터 줄곧 이청천은 이승만을 수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한국주재 10대표단 대표(한국에 주재하는 중국측의 무슨 대표라는 의미로 들립니다)로,  또 이승만이 손문의 능을 방문할 때는 한인측의 장군으로, 남경서 주최된 국제연환모임에서는 배동참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청천과 이박사와의 관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전, 먼저 위 기사의 이박사 환영모임에 중국 측의 국방장관 백숭희가 자리를 같이하고 있는 장면을 잊지 말고 꼭 기억해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이 부분은 너무도 중요한 부분이라, 특별히 분홍색 박스로 표시하여 두었습니다. 백숭희는 장개석 휘하의 중국 국민당 소속 군인으로 장개석이 주도한 4.12 상해 대도륙 사건의 핵심 책임자이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크리스말로윈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릴 예정입니다. 


그리고, 위 기사의 하늘색 박스  부분은 이청천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설명하다보면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게 되어버립니다만, 이 부분은 이승만의 이씨 왕조 계보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간략하게나마 언급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을 듯합니다. 


 "중산(손문) 능 알현을 마친 이박사는 춘광방농한 강남풍경을 내려다보면서 감개무량하여 긴 여행의 피로를 잠시 잊으신 듯하였다"



위 하늘색 박스와 관련된 이야기가 "오래된 노래"편에서 이어질 예정입니다.


2017-11-19


정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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