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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3 (15:22:45)






            드는 비는




                     



                   

         ● 김구는 대한민국 건국 공로자가 아니다? 침묵하는 백범家의 후예들, 왜? 팩트 TV 2014년11월05일


                   msn010.gifmsn010.gif   http://facttv.kr/facttvnews/detail.php?number=5821  msn010.gifmsn010.gif    



★ 백범 김구의 차남
                         김신은 공군 장성 출신입니다. 중화민국 공군사관학교를 나와 해방 후 공군장교로 임관해 한국전쟁에도 참전하였으며, 공군본부 작전국장, 공군참모총장 등을 지냈습니다. 하나 눈여겨 볼 점은 공군참모총장 시절인 1961년 박정희 등이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키자 그는 이에 가담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을 지냈습니다.  쿠데타 이듬해인 1962년 김신은 공군 중장으로 예편했는데요,  이후 박정희 정권 하에서 자유중국 대사, 교통부장관, 유정회 국회의원, 국회 농수산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습니다.  

★ 김구 손자 김진 전 주택공사 사장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에 김진은 주택공사 사장으로 영전했습니다. 김진은 주택공사 하도급업체로부터 1억6천 여 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이듬해 검찰에 구속된 적이 있습니다. 이후 법원은 김진에 대해 징역2년에 추징금 1억8천68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 김구 손자 김양 전국가보훈처장
김양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8월 상하이 총영사로 임명돼 근무하다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국가보훈처장으로 영전했습니다. 특히 김양은 이명박 정권 초기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고 시도할 당시 국가보훈처장을 지냈는데요, 당시 직책 때문인지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MB 정권 하에서 보훈처장을 지낸 것을 두고 당시 독립운동가 사회에서는 말들이 많았던 것으로 압니다.

  

★ 백범 손녀인 김미 남편 김호연


박근혜 대통령의 ‘서강대 인맥’으로 불리는 인물로 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18대 대선 때는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경선캠프 총괄부본부장과 중앙선대위 종합상황실 부실장을 지냈습니다.
 




 " 백범가의 후예들이 대를 이어 박정희 일가에게 충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박근혜 정권에서 '건국절'을 다시 추진하고, 또 고위인사가 백범을 폄훼하는 모독 발언을 해도 반박이나 항의는 커녕 다들 침묵하고 있는 셈이라고 하겠습니다."


 

                                                            김구 윤봉길.PNG



저는

      최근 독립기념관 자료에서 김구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기사들이 여운형(혹은 여운홍)관련 기사들과 함께 자취를 감춘 부분에 대해 의혹을 가지고 현재 독립기념관 관장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더니, 바로 윤봉길 의사의 손녀 딸 윤주경씨라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윤주경씨는 2012년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활동하며 박근혜 정권의  인수위 100% 국민대통합위원회에서 부위원장 직을 지냈다고도 하는데, 그는 종편<채널 A> 프로에 출연해 대선후보 3인 첫 TV 토론에서 이정희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두고 친일파 후예라고 지칭한 것은 연좌제라며 이 후보를 강하게 비난했다고 하며, 또 참여정부에서 친일파 재산환수를 통해 독립운동가 후예들을 지원하고자 한 것을 두고는 "치욕스러웠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박근혜 품에 안긴 "윤봉길 손녀" 윤주경 (오마이뉴스 2012.12.29)

 msn010.gif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19436  msn010.gif


현재 독립기념관장직을 맡고 있는 윤주경씨는  독립기념관 홈페이지에 공개한 근대 신문의 중요한 기사들이 삭제되고 있는 상황을 알고 있는 계신 걸까요? 모르고 계신 걸까요? 만약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방임하고 있다면, 국민대통합 차원에서 역사의 진실을 은폐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신 걸까요?


추가로 한가지 더 드릴 말씀은, 위 첫번째 기사의 내용처럼, 김좌진 장군의 손녀딸인 김을동 의원의 친박근혜 성향도 이에 못지 않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정말 백범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와 김좌진 장군은, 하늘에서 후손들의 위와 같은 뒷걸음 행보를 보면서 목놓아 통곡하고 계신 걸까요?


                   나만 몰랐던 이야기


                    


이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먼저 "이러지마 제발"편에 올린 독립기념관에서 삭제된 기사를 다시 올려드리고 좀 분석을 해볼까 합니다. 



중경래보.JPG




제가

     수집한 자료집에서는 위 기사에 태평양주보 1940년 6월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로부터 3개월 지난 1940년 9월에 한국광복군 성립 비준 기사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 날짜가 틀린 것은 아닐 듯합니다.  


먼저 위 기사 내용을 좀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도록 하죠. 


" 한국독립당은 조선군사 10만명으로 군사를 따로 조직하여 일본에 대항하려는데, 임시정부는 장개석장군에게 조선군사운동에 대한 양해를 받고 임시정부의 승인도 요구하였다 하더라."


먼저 위 기사에 등장하는 "한국독립당"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필요할 듯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백과사전에서는 1940년 결성된 한국독립당(대표 : 김구)이 하와이에 지부를 설치하였고 이승만과 서재필이 이 하와이지부에 입당하여 활동하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세 신문 기사(특히 태평양주보)를 보면, 한국독립당은 오히려 이승만이 운영하는 미국 구미위원회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음을 명백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한국독립당이 결성되기 이전인 1935년에 결정된 한국국민당 역시 김구가 주도하고 있었는데, 이 한국국민당은 미국 구미위원회 소속 한인 국민회의 한국지부임을 근대 신문 기사(한국국민당 기관지 "한민")을 통해 명백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관련 증거들이 너무도 많아서 제가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위 신문 기사들을 직접 접하시면 될 듯합니다. 


또 한국독립당이 장개석에게 승인요청한 조선군사 10만명과 관련하여서는 아래 기사에서 보다 정확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기사는 구망일보 1940년 9월 25일 기사 중 일부로 기사 제목은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성립 기념식 거행" 입니다. 위 1940년 6월 기사에서 한국독립당과 임시정부가 조선군사운동 승인을 장개석에게 요청하였고 그로부터 3개월 지난 이 시점에 장개석의 승인으로 한국광복군총사령부가 성립되게 됩니다. (구망일보는 중국 계림지역에서 발행된 신문으로 원문보기가 안되고 있는 신문)


xx만명.JPG



위 구망일보 기사를 통해 장개석이 승인하였다는 한국광복군의 성격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들 광복군은 중국 중앙군사학교와 일본사관학교 및 기타 군사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한국 청년장교 5~6백명이 통솔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 병력은 현재 대부분이 조선과 동북 각 성의 경계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동북 각 성의 경계지역이라 함은 우리가 지금 "요동과 만주"라고 일컫는 지역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한국 광복군의 성격에 대해서는 아래 1940년 9월 28일 발행된 태평양주보 기사를 통해서 다시 한번 명확히 확인이 됩니다.


태평양주보.png


위 캡쳐된 태평양주보 기사의 좌측 박스 부분을 통해 위 기사가 1940년 9월 28일에 발행된 기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측의 박스 기사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4년전부터 한국광복군은 몇몇 단체에 속하여 중국 각처에 일군을 대항하였는 바 혹은 중국군대에 들어서 싸워왔다. 이번에는 광복군을 통일하고 한국임시정부 하에 군대를 따로 조직하여 장개석 장군 하에 중군과 합동 작전을 할 터이다. 이에 대하여 장개석 장군은 군부에 명령하여 한국광복군 조직을 후원한다."


한국 광복군이 장개석 장군의 군부와 합동작전을 한다고 명확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광복군의 성격을 보다 더 명확히 규명하려면 장개석 군대의 성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장개석의 군대는  "꽃피는 봄이 오면" 사이트의 "조곤 쿠데타 " 관련 편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일본 극우정치세력인 정우본당의 정치 이념인 파쇼 정치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군대였습니다.


아래는 좌측은 동아일보 1935년 8월 12일 기사이고, 그 좌측은 동아일보 1933년 6월 10일 기사입니다.  기사 내용으로만 보면 장개석이 일본 극우정치집단인 정우회의 지령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장개석 파쇼.JPG

 

이런 이유들 때문에 그는 이미 1931년에 중화민국 정부에서 탄핵되고 그 후임에 대만 출신의 임삼이 중국 대총통자리에 오른 상황이었죠. 


임삼.JPG



문제는 위 태평양주보의 1940년 기사가 보도된 시점에 장개석은 실질적으로 군사력 이외에는 아무런 실권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독립당과 미국 구미위원회에서는 중화민국 정부 주석인 임삼에게 한국광복군 및 임시정부 승인 요청을 한 것이 아니라 파쇼정치로 인해 이미 탄핵된 군벌 장개석을 "장군"이라고 호칭하면서 그에게 한국광복군 성립과 임시정부 승인을 요청하고 있다는 부분은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장개석의 군대에 대해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이해를 하려면 그의 정치 역정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데, 이에 대해서는 추후 차근차근 관련 내용들을 검토해나갈 예정입니다. 다만 아래 동영상은 김구가 주도하는 한국광복군의 성격을 특정지을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 있어서 특별히 올려드립니다.  아래 두 군가의 음절이 똑같다는 부분도 염두에 두시면서 감상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일본 군가                                                                                                                        용진가



                             


 

용진가(勇進歌)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9A%A9%EC%A7%84%EA%B0%80

1910년대부터 만주 지역에서 불린 독립군의 대표적인 군가이다. (요동만주 넓은 뜰을 쳐서 파하고) 북한에서는 김일성 주석의 항일빨치산들이 부르던 혁명가요 '유격대행진곡'으로 알려져 있으며,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행사 중 평양 순안공항에서 북한 위병대(의장대)가 행진곡으로 연주하기도 했다. 1910년대 당시 만주지역의 신흥무관학교 교가로도 변형되어 사용되었으며, 전주 지역에 1900년대 설립된 신흥학교 교가로 변형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위 용진가 가사의 첫번째 소절에, 요동반도 넓은 뜰을 쳐서 파하고 여진족을 토멸하고 개국하옵신 이지란의 용진법대로 우리들도 그와 같이 원수쳐보세~ 라는 가사가 등장합니다.  정말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다.


참고로 아래는 신한국보 1910년 11월 22일 기사입니다.

요동과 만주.png


신한국보는 미국 한인 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가 호놀룰루에서 발행한 주간 한글신문으로  국민보의 전신이죠. 국민보는 후일 미국 구미위원회의 한인 국민회 기관지 역할을 했던 신문입니다. 위 기사에는 요동과 만주 등지에는 동부여가 수천리 토지를 옹유한 대국이라고 명백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구미위원회에서는 요동과 만주의 여진족이 동부여족으로 같은 단군조선의 자손임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또 앞에서 살펴보았지만 이지란이란 인물이 바로 여진족이었다는 것은 용비어천가에도 명시되고 있는 사안인데, 위 용진가에서는 여진족인 이지란이 요동만주의 여진족을 토멸하여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웠다는 내용으로 군가의 가사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잘 모르고 한 일이 아니라 역사를 너무도 잘 아는 자들이, 역사에 무지한 군인들에게 왜곡된 역사 의식을 심어줘 결과적으로 같은 민족을 총부리로 겨눠 토멸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시키고 있다는 부분은 절대 간과할 수없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참고로 1940년 결성된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이었던 이(지)청천은 이승만과 같은 배재학당 출신으로 1919년 시점 위 노래를 교가로 부르던 만주지역 신흥무관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독립간부 양성에 진력하였다고  합니다. (위키백과 : https://ko.wikipedia.org/wiki/%EC%A7%80%EC%B2%AD%EC%B2%9C )


더 기가 막힌 것은, 위 용진가에 대한 백과사전 기록에 의하면 , 북한에서는 이 노래가 김일성 주석의 항일빨치산들이 부르던 혁명가요 '유격대행진곡'으로 알려져 있으며,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행사 중 평양 순안공항에서 북한 위병대(의장대)가 행진곡으로 연주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위 백과사전 기록이 사실이라면 북한의 영웅 김일성은 동부여족인 조선인을 토멸하고  여진족의 삶의 터전이던 대만을 군사력으로 점령하고  입성한 장개석이 이끄는 진짜 독립군 때려잡던 일본 육군 주력부대인 관동군이라는 이야기가 되는 거 아닙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북한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해명이 있어야 할 듯합니다.


또 한가지 주목할 부분은 6.25전쟁 당시 우리가 알고 있는 중공군에는 상당수 조선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한 독립운동가 후손의 증언입니다. 


조선의용군.JPG


저는 이 책을 보지 않아 내용을 잘 모르고 있는데, 다행히 어떤 분의 블로그에 이 분의 증언 내용들이 간력히 요약되어 있어 퍼왔습니다.

 <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땅 - 조선족과 6.25전쟁의 실체 >

  http://myland.tistory.com/entry/%EC%A1%B0%EC%84%A0%EC%A1%B1%EA%B3%BC-625-%EC%A0%84%EC%9F%81%EC%9D%98-%EC%8B%A4%EC%B2%B4


김중생씨는 독립투사 '김동삼'선생의 손자로 그는 6.25 남침 '주력부대'는 '조선의용군' 이 주축이된 '6만5000'명의 '조선족'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 그는 이  조선 의용군의 정체에 대해  " 의열단장이었던 '김원봉'(중국에서 북경정부와 함께 조선 적화 운동을 펴던 여운형의 동생 여운홍이 특별히 독립운동 자금 지원을 역설한 인물)은 1938년 10월 중국 우한(武漢)에서 항일무장독립부대를 결성하게 되는데 중국국민당 지도부(장개석)와 연계하여 '한중' 연합체 성격의 무장부대의 필요성에 의하여 탄생한 것으로 '조선혁명군'의 뒤를 잇는 '조선의용대'가 이것입니다. '조선의용군'은 6.25 이전에 북한으로 들어가, 인민군 주력부대로 재편되어 남침의 선도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또 '중국국민당 산하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한 '조선족청년' 122명을 중심으로 출범하고 1942년 좌익계열 대원들이 의용대본부가 있던 '중경'을 떠나 '화북지역'으로 이동하여 '중국공산당' 영향권으로 들어가버리면서 의열단의 '김원봉' 계열(김구, 윤봉길, 여운형, 여운홍을 포함)은 광복군으로 참여하고, 화북지역으로 떠난 좌익계는 '중국공산당'의 지원 하에 '조선의용군'으로 편제를 갖추어 '중국공산당'의 지휘계통을 따르게 됩니다. 이들은 일본패망 뒤에도 무장해제를 당하지 않았으며 '국민당' 정부와의 내전을 준비하고 있던 '중국공산당'은 '조선의용군'을 만주로 이동시켜 현지 '조선족'을 입대시켜 규모를 확장하여 후에 '국공'내전에 참전하여 '국민당군'과 싸우게 됩니다. 이들은 6.25 이전에 북한으로 이동되어 인민군의 최전방에서 남침의 선봉대 역할을 맡게 되는데  '김일성'은 6.25 이전에 1950년에 두번에 걸쳐서 모택동에게 밀사를 보내어 조선족 부대의 파병요청을 한 것이 정설로 굳어져 있습니다. 또 김중생씨는 '조선의용군'(조선족) 은 3년 동안 모두 10만명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고 증언합니다


김중생씨의 증언과 관련된 부분은 국민들만 모를 뿐  당시 군대를 실질적으로 움직였던 중국과 대만 조선의 권력자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책임있는 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해명이 있어야 할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래는 국공합작시기이자 김구가 등장하던 시기 이후 새로 만들어진 한국의 독립운동가입니다.   

아래 곡의  원곡은 미국의 군가인 < Marching Through Georgia > 라고 합니다이 곡이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면서 조선에도 그 곡이 전해졌다고 하는데 이 곡을 신흥무관학교에서 개사하여 교가로 사용하다가 다시 한번 개사된 것이 아래 우측의 독립군가라고 합니다.


       미국 군가(Civil war song)                                                                                                대한독립군가

                      .

 

그런데 상해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아래 독립신문 1920년 3월 1일자에 실린 원래의 독립군가는 위 동영상의 노래가사와 전혀 다릅니다. 아마 곡의 선율도 마찬가지로 위의 독립군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단어 일부는 이해하기 쉽게 현대식으로 수정하였습니다.)

 

 독립신문 192031(기사제목 : 독립군가 獨立軍歌(行步歌曲調))

 

나아가세 독립군아 어서 나가세 기다리던 독립전쟁 도라 왓다 네 이때를 기다리고 十年동안에 갈앗던 날낸 칼을 시험할 날이 /  나아가세 대한민국 독립군사야 자유독립 광복할 날 오늘이로다 정의의 태극깃발 날리는 곳에 적의 군세 낙엽같이 스러지리라 /  나라 半萬年 피로 직킨 땅 오랑케 말발굽에 밟히는 모양인듯 하나  / 2천만 단군의 후예( 檀祖 / 위 김구 동영상에서는 한국인구를 3천만이라고  했는데. 이는 독립신문이 정간(1926)된 뒤 미국에서 발행하는 이승만이 주도하는 언론들에서 미국 동포까지 합산하여 발표한 한국의 인구숫자입니다.)의 혈손 원수의 칼 아래서 우짓는 소리 /  양만춘 을지문덕 피를 받았고 이순신 임경업의 후손이 아니냐  / 나라 핸 목숨을 터럭과 갓히 싸호던 네 祖上 後孫 아니냐 /  彈丸이 비빨가치 퍼붓더라도 창과 칼이 네 압길을 가로막아도 大韓 勇壯 獨立軍士야 나아가고 나아가고 다시 나가라 /  最後의 네 피방울 떠러지는 날 最後의 네 살졈이 떠어지는 날에 그리던 祖上나라 다시 살리라네 / 그리던 자유꽃이 다시 피리라 /  독립군의 百萬勇士 달리는 곳에 鴨綠江 어별(魚鱉/ 물고기와 자라)들이 다리를 노코 獨立軍의 불근 피가 내뿜는 때에 白頭山 굳은 바위 길을 열리라 獨立軍의 날낸 칼이 빗기는 날에 현해탄 푸른 물이 핏빗이 되고 獨立軍의 벽력같은 고함 소리에 富士山(후지산솟은 봉이 무너지노나 ' / 나아가세 독립군아 한 호령 밑에 질풍같이 물결같이  달려 나가세 / 하나님의 도으심이 우리에 잇고  / 祖上 神靈(신령오셔서 인도하리니 / 원수의 군사  과 갓고 구름 갓하도 우리 발에 티끌같이  흩어지리니 / 영광의 最後勝利 우리 것이니 獨立軍아 질풍갓히 달려 나가세 / 하늘은 맑앗도다 땅은 열렷네 榮光 獨立軍旗 높이 날리네 / 수풀같은 과 칼에 임리(淋漓/ 흠뻑 젖어 뚝뚝 흘러 떨어지거나 흥건한 모양 한 것은 十年 원한 씻어 내던 핏즐기로세 / 빛은 낡고 해여진 우리 軍服은 장백산(長白山) 낭림산(狼林山)을 장구한(長驅/먼 곳까지 몰아서 쫓아감) (표시)우레갓히 울려오는 만세소리는 한양성(漢陽城/ 무창) 大勝利(신해혁명)의 개선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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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가 크리스말로윈에서 계속 될 예정입니다. 



2017.11.04

정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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