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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6 (21:43:00)



 "꽃피는 봄이 오면" 사이트의  msn010.gif 조곤 쿠데타 관련 모음 msn010.gif 의 후속편입니다.                   

 




                           그때 다시    



                          





1924년

          11월 26일 일본 신호에 도착한 손문은 그곳에서 무려 열흘 이상을 머무르며 마지막까지 애타게 그를 기다렸던 듯합니다. 그는 신호에서  일본과 중국의 친선을 강조하는 연설을 하였고, 또 아세아주의를 고창하기도 합니다. 아래 기사들은 일본 신호에서 핵문이 연설한 "아세아주의"의 요지입니다.


손문 연설.JPG


조선신문 1924년 11월 30일                                                                        동아일보 1924년 11월 30일


손문 일지 친선.JPG   손문연설.JPG



그가 주창한 아세아주의는 곧  "왕도의 문화"를 칭함이라고 합니다.  그는 "우리는 이 아세아주의를 세계에 보일 필요가 있다."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일본과 중국 양국이 진실로 이해하여 이 아세아주의로 아세아 민족을 규합하여 전진하면 세계의 평화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동양의 왕도 정치는 바로 맹자의 왕도 정치를 의미하며 그에 대비되는 단어는 바로 패도 정치입니다.  제가 보기에 손문은 이 시점에 여원홍의 신변에 분명 무슨 변고가 생겼다는 확신을 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때문에 여원홍의 자취가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신호에서 무려 일주일 이상을 머무르며, 일본에게 왕도 정치를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위 기사에 보도된  그의 아세아주의를 뒤집어 해셕하면 일본이 만일 여원홍을 납치하여 감금하고 있다면 이것은 왕도가 아닌 패도이며 아세아주의도 될 수 없고 세계 평화도 요원해지게 되며, 덩달아 일본과 중국은 앞으로 같이 갈 수도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신호에서 아세아주의를 고창하고 일본을 떠난 손문은  1924년 12월 4일 중국 천진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곧이어 북경에 입경하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죠. 북경에서는 단기서의 주선으로 시국 수습을 위한 국민대표회의가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당시 북경에서는  줄곧 손문을 환영하는 대대적인 환영식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손문의 입경 일시가 점점 늦어지면서, 그의 입경 지연과 관련한 여러가지 설들이 퍼져나가기 시작하죠. 


그런데, 그가 중국 천진에 도착한지 4일이 지난 시점인 1924년 12월 8일, 조선신문에 아래와 같은 기사가 실립니다.


(기사 제목 : 손문 상경 중지)


손문 상경중지.JPG


(천진 6일발전) 손문씨가 6일 아침 심한 복통으로 인해 상경이 중지 되었다. 병명은 담농염일 가능성이 있다.


다른 신문에서, 그의 병세는 담낭염이나 담핵염(膽核病 / 담석증?)이 일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후인 1924년 12월 11일 그의 상태가 양호하여져 곧 상경한다는 언론의 보도가 이어집니다. 이때부터 각 언론사에서는, 그의 병증이 사실이라는 보도와 그가 병을 칭하는 것은 (정치적) 수단일 뿐 이라는 기사가 엇갈려 보도됩니다.


그로부터 5일 후인 12월 16일 손문씨의 입경은 수일 후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보도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9일 가량 지난 1924년 12월 23일 손문씨의 병이 완쾌되지 않았다는 보도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다음날인 1924년 12월 26일 손문씨가 중태로 입경이 무기연기 되었다는 보도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1925년 1월 1일 각 정계에서 손문이 입원해있는 병원으로 문병을 갔다는 기사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1월 3일 손문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당당하게 북경에 입성하게 됩니다.  그는 북경에 입성한 이후 다시 중태에 빠져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때 각 언론에서는 그의 병명이 간장궤양이라는 공식 발표를 합니다. 그리고 같은 달 1월 18~  19일 손문이 수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언론의 보도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같은 달 1월  25일 손씨의 용태가 양호하다는 기사가 뜬 것을 보면, 그가 수술 이후 상태가 많이 좋아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 이틀 후인 1925년 1월 27일 손씨의 정치 활동 지속이 불가능하다는 언론 기사가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등장합니다.

 " 북경에서는 극비에 부치고 있으나, 손문씨의 병은 간장병이며 용태가 점차 완쾌로 향한다 하나 다시 정치활동을 지속함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한 신문에서  손씨 사망? 용태 위험이라는 기사가 등장하는데, 곧이어 그의 위독설은 그의 용태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기사로 대체됩니다.  그리고 1925년 1월 31일, 그의 절개 수술 결과가 매우 좋아 상태가 아주 양호하여졌다는 기사가 아래와 같이 여러 언론에서 공통적으로 보도를 합니다. 


손문 회복.JPG


그의 용태가 매우 순조로와서 원기도 회복하고  식사량도 점점 증가하고 있고,  어조도 평소와 다를 바가 없다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이 기사가 나간 시점은 정확히 1925년 2월 1일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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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장 "가슴시린 이야기"에서 후속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2017.10.17


정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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