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5
조회 수 : 156
2017.09.10 (11:28:09)

                                         

                            한일합병 조약

 

제 1조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 차 영구히 일본국 황제 폐하에게 양여함

2 일본국 황제 폐하는 전조에 게(揭)한 양여를 수락하고 또 전연 한국을 일본에 병합함을 승낙함

제 3조 일본국 황제 폐하는 한국 황제 폐하 태황제 폐하 황태자 전하 병기후비급 후예로 하여금 각기 지위에 응하여 상당한 존칭 위엄 급 명예를 향유케 하며 또 이를 보좌하기에 충분한 세비를 공급하기로 약함

4 일본국 황제 폐하는 전조 이외의 한국 황족 급 후예에 대하여 각기 상당한 명예급 예우를 향유케 하며 또 이를 유지하기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할 것을 약함

5 일본국 황제 폐하는 훈공 있는 한인으로서 특히 표창함을 적당하다 인정되는 자에 대하여 영작을 주고 또 은금을 하사할 것을 약함

제 6 또 일본국 정부는 전기 병합의 결과로써 전연 한국의 시정을 담임하고 동시에 시행하는 법규를 준수하는 한인의 신체급 재산에 대하여 충분한 보호를 주고 또 그 복리의 증진을 도모할 것으로 함

7 일본국 정부는 성의 충실히 신 제도를 존중하는 한인으로서 상당한 자격이 있는 자를 사정이 허락 하는 한에서 한국 내의 제국 관리로 등용할 것을 약함

8 본 조약은 일본국 황제 폐하 및 한국 황제 폐하의 재가를 거친  것으로 공포일로부터 시행함

 

         위 증거로 양 전권 위원은 본 조약에 기명 조인함

 

         융희 4822

         내각 총리 이완용

         통감 자작 사내정의 


(위 내용은 원래 독립신문에 게재되었던 내용으로 좀 중요한 것 같아 정리하여 둔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금은 독립신문에서 위 내용이 사라지고 안보입니다. 다행히 황성신문 초록에서 위 내용과 아주 정확히 똑같은 기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캡쳐해 올려드립니다.)


황성신문 1910년 8월 30일 (일한합병조약)


한일합방조약.JPG


위 

   합병조약에서 좀 중요한 부분이 1조와 6조, 7조인 듯합니다. 


제 1조의 경우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 차 영구히 일본국 황제 폐하에게 양여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래의 1948년 4월 29일, 부산신문 기사에 의하면 이왕가가 원(元) 왕가라는 이름으로 일황족난에 자신들의 족보를 올렸다고 합니다


일본 황실.JPG


한마디로 일왕가와 이왕가가 한 가정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이때는 해방 이후의 일인데, 해방 직후, 이왕가는 미군정에 의해 일본 군벌파로 분류되어  재산이 동결되었다는 기사를 앞 부분(money, money, money) 에서 언급드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아래 기사를 보면, 해방 직후 미군정이 일본 황실 재산도 압수하였다는 기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1945년 11월 3일 영남일보(기사제목 : 황실재산도 압수, 배상금 지불에 충당)

일본 황실 재산.JPG

 

그런데 이왕가가 그 이후인 1948년 일왕가와 한 가정을 꾸렸다면 굳이 한일합방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왕가 재산이 일왕가 재산이 되고 일왕가 재산이 이왕가 재산이 되는 셈이 아닙니까? 일왕가는 전쟁범죄로 인한 배상금 문제로 쪽박을 찬 게 아니라, 오히려 전쟁을 일으켜 인명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살상한 덕분에 조선 땅덩어리를 다 차지한 셈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또 제 6조의 경우는, 해방 이후에도 지속되어 온 내선일체 사상(조선과 일본은 하나이므로 조선인도 황국 신민으로서의 의무를 다 해야 한다는 것)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는 듯합니다. 


1940년 8월 11일 국민신보에 의하면 각지 청년이 보내온 황국신민이 될 것임을 서약한 글을 새긴 기둥을 함흥신사 내에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함흥 신사는 이왕가의 조상을 모신 사당입니다. 이왕가가 일왕가가 합병을 한 후, 두 왕국의 결합으로 탄생한 것이 소위 "황국".) 그런데, 이와 같은 기사가 실린 해당일의 국민신보에 황국의 신민이 무엇인지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아래와 같은 공고문이 하나 실립니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친일 극우 신문'이라고 알고 있는 매일신문사에서 작성한 공고문으로 진정한 극우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한 눈에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매우 소중한 자료입니다.


내선일체론.JPG




 <문부성 추천 소화국민독본>

 

본서의 원저는 발매부수 60만을 돌파하였다. 지금까지 증간에 증간을 거듭하고 있다이 호평은 본서의 진가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내선일체의 근본이념은 반도민중의 황민화에 있다황민이 되려면 일본학을 배우라본서는 일본학의 진수다본서를 읽고 일본국민의 자격을 얻고 교육과 수련을 쌓을 것이다.

1억 내선동포의 당면한 임무는 사변처리이며 흥아건설이다그리고 그 근본뜻은 오직 정신일본의 교양이다소화국민독본은 덕복소봉옹(翁)이 "사변최후의 승리는 국민의 정신적무장에 있다."고 하여 당당한 필진을 친 것이다일구일언피의 대문자가 아님이 없다. 이 책이야말로 일억동포 필독의 서다창씨만 하면 일본 국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 국민의 정신을 체득하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읽으라일본정신함향 독본을!!

황국정신의 현장없는 내선일체는 없다!

발행저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매소 매일신보사

 


일왕가와 이왕가가 합방하여 꾸린 황국의 신민이 되라고 조선연맹이 앞장서서 홍보하고 있습니다.  이 공고문의 공고 대상은 조선인인 듯한데  특히 이씨 왕조의 사당에  그 백성이 될 것을 서약한 청년들이라면 아마도 이왕가의 수많은 자손들과 이왕가로부터 작위를 받은 귀족들 그리고 그 자손들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또 황국신민이 되기 위해서는 창씨는 기본적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창씨개명을 하여 일본 사람이 된 조선인들이 많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일합방 조약 제 6조에서는 황국의 신민으로서 황실의 규범을 잘 준수하는 자에게는 상금도 내리고 작위도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한일합방 조약 제 7조에서는  황실의 규범을 잘 지키는 자들로 하여금 한반도의 관리직을 맡을 수 있는 자격을 준다고 합니다. 


비록 해방이 되었지만, 해방 이후에 미군정은 여전히 조선 총독으로 하여금 한국을 관리하도록 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헌법과 주권을 수호하다 죽어간 수많은 독립 운동 투사들의  넋이 담겨진 "주권재민"의  대한민국 헌법 정신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 이들 이왕가와 일왕가는 일본을 배척하고 황실을 배척하는 조선인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배일선인, 불령선인이라고 지목하여 조센징이라고 호칭하였고, 반면 조선인으로서 주권을 포기하고 창씨개명하여 황국의 신민이 된 자들은,  조센징에 대해서는 그 가진 것을 다 수탈하여도 괜찮다고 믿었고 그 인종을 거의 씨도 없이 말살시켜버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였던 듯 합니다. 



                 FACE


                 


이와 같은 일이 가능했던 것은 봉건적 사고 방식에 도취되어 있는 특수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동포를 동포로 보지 않고  무언가가 한참 떨어지는 하층민 정도로 여겼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래는 해방 후에도 잔존하고 있던 한반도에 대한 소위 황국식민사관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사입니다. 



                           우리지방 산업부흥



1946

      년 5월달의 부산신문 기사인데,  "우리지방 산업부흥"이라는 제목의 시리즈로 아래와 같은 기사들이 총 8개가 게재됩니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경상남도를 우리 지방이라고 부를 뿐 아니라 3.8선 이하의 조선 전 영역이 우리 지방으로 불리고 있었고 또 경상남도의 경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행정구역 구분이 아닌 3부 19군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황실의 규범을 잘 준수하여 한국의 관리로 임명된 자들이 한국을 하나의 독립적인 국가로 보지 않고 단순히 황국에 딸린 지방 지역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울러 지금까지도 한국인이 한국을 보는 눈과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 한국인을 보는 시야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도 추정할 수 있습니다.(기사 하단에 기재된 내용은 한글 번역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지방1.JPG    

우리 지방의 산업부흥은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촉성하기 위하여 또는 우리 지방의 발전과 인민 생활의 안정을 위하여 초미의 급선무이다. 해방이후 우리 지방의 산업은 농업을 제외하고는 정체상태에 빠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시급히 부흥시켜서 생산을 증진하여야 하며 나아가 국가의 백년경제기초를 확립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나 한마디로 산업부흥이라하나 균형적 발전을 위하여 많은 문제와 난관이 우리 앞에 있다. 즉 산업재 편성, 자금, 자재, 운수, 물가, 생산수단, 수입문제, 경영자, 기술자, 노무자의 배치와 생활 안정 문제 등이다. 이에 우리 지방 중요한업인 농업, 수산, 공업, 광업, 해운업, 임업 등의 부흥상태와 대책을 소개하기로 한다.

<수산업> 어족조선의 보물창고, 연안은 그대로 수족관

본도 관내 3부 19군 중 바다에 면한 부와 군은 2부 9군, 소속도서는 398, 해안선의 연장은 본륙이 231리 도서 339리로 도합 570리에 달한다. 그중 부산 이서의 연안은 굴곡이 많고 항만이 서로 연해있으며 대소도서가 산재하여 해산물의 회유번식에 적합하고 근해 일대는 광대한 어족 회유(어장)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한류난류가 교류하여 천혜의 어장을 형성하고 있다. 조석간만의 차는 2내지 4미터로 조류가 급격치않고 기후 또한 온화하여 사시 어선이 작업하기에 적합하다. 본도에 있어서 중요 어획물은 어류, 패류 등등이다. ...


       <임산업>향토녹화급선무 / 도내수요도 태반부족

        우리지방2.JPG

 

15전 경남도내 임야 면적의 약 76부가 일인회사 개인의 소유였고 조선인 소유면적은 겨우 24부에 지나지 못하였다. 일인이 철퇴한 후 일인 소유의 임야는 법령 제 33호에 의하여 군정청 소유로 되어 장래 우리 국가의 귀중한 재원이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군정기(韓國의 軍政期)는 1945년 9월 9일부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까지 미군이 다스린 기간을 총칭함


군정기 이전에는 일인회사가 경남도 임야의 7할 6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군정기에 이를 군정청 소유로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군정기가 끝난 후에 과연 그 땅이 누구 소유가 되었는지를 확인하면 이 기사에서 언급하고 있는 우리지방의 주체인 국가가 한국인지 아니면 이씨왕가인지 아니면 일본인지를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근 지방주민이 공공연하게 벌채를 하고 또는 자기 소유 임야까지도 벌채를 남용하는 등 귀한 국가 재원을 파괴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군정도 산림과에서는 이를 보호육성하고자 조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각 부군에서 소재하고 있는 부락별 삼림보호제를 빨리 완성시켜 향토 녹화에 전력을 다하고자 각부군에 산림주사 1명씩과 각 읍면에 지방산림주사 1명씩을 주재시켜 지도와 보호단속을 하는 한편 적극적으로 식림을 시작하였다. 도내 238읍면에 대하여 1개 읍면에 평균 5만 합계 일천이백만본의 묘목을 무상배부하여 해방기에 조림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최근 산불의 발생이 날로 불어가고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본도에서는 조림운동과 함께 일반의 산림애호사상을 총동원해 산불의 미연방지에 노력하고 있다. 만약 산야에 수목이 울창하지 않으면 홍수의 폐해를 방지할 수 없고 용재와 산란에 막대한 곤란을 당할 것은 물론 국가 건설에도 크나큰 지장이 생길 것이다. 다음 해방후의 본도내 임산물 산출 상황과 그의 발전을 위한 대책을 간략히 소개하여 보기로 한다경남도내의 임산물의 종류로는 재목, 죽재, 장작, 목란, 수실, 균단(벗슴), 송지, 약초, 산채, 수피 10종류에 불과하다. 여기에 1945년도의 각종류에 따라서 생산 통계를 들어보면 목재 250 등등 인데...


         <해운업> 대소선박 1500쌍, 연안 수송에 계획운송 기대        


           우리지방3.JPG      

           

3면 바다에 둘러싸인 우리 조선은 자연적 조건으로 보아 해운의 발전은 다른 산업보다 먼저 부활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체 상태에 있음은 3.8 경계선으로 말미암아 남북의 물자가 융통되지 않아 각 산업의 부활을 지체시키고 있는데 원인이 있다. 당국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현재 5톤 이상의 선박이 23백톤인데 절반은 어선이고 나머지는 화물선이다. 이것도 기름과 부속품의 부족으로 완전히 운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 기름난에 봉착하여 3분의 2의 선박은 운행을 못하고 있다. 이것이 일반산업에 큰 영향을 끼침은 물론이다. 그리고 해운계에 당면한 난관의 하나는 미군정청이전 전 일본인 소유 즉 적산(敵産)선박에 대하여 양도나 임대차 또는 선박 수선 관리에 관한 장치등에 관한 확고부동한 명시가 없는 것이다. 조선의 건설을 위하여 일인소유 선박도 적극적으로 운행을 시켜 해상 수송에 이바지하도록 하여 주기 바라는 바이다. 금년 2월 초순 미군정 해사부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범선 12백척, 기범선과 기선이 3백척 합계 15백으로서 실로 한심한 숫자이다. 8할 이상은 부산을 중심으로 조선해협 연안항구에 취역하고 있으나 이 8할이상이라는 숫자를 다시 고찰하여보건대 이 수자의 약 3할은 수선을 요하는 것으로 운행치 못하고 운행 가능 범선이나마 연료유(주로 중유 마신유) 뷰족으로 인하여 취항 못하고 있는 것이 최근 부산 항내의 실정이다금후 항해 기술 또는 조선 기술의 광명이 균형을 가지고 진보하여야만 조선 해운의 장래성이 기대될 바이니 조선 공업의 부흥, 조선기술자 양성, 선원 양성 등이 가장 긴급하다. 현재는 기술자 또는 선원 조사가 불충분하여 경남 도내의 통계수를 들 수 없으나 방금 해기면장수유자를 조사하고 있다. 조선 해운의 발전을 위해서 어떠한 방책을 세워야만 할 것인가 즉 해방선 현하 우리 조선의 당면한 중대 문제의 하나는 필요 물자의 수송이다. 강력한 계획 수송의 체제를 세워 물자 수송을 원활히 함으로써 공장에 원료를 공급하여 생산력을 증진케하고 생활필수품의 유통을 촉성하여 저물가정책에 협조하게 될 것이다.



   <광업편> 수면상태의 지하자원, 선광제련시설의 확충도 시급

   우리지방4.JPG   


우리 조선에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수다한 광물이 산출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8. 15 이후 도내 각종의 광업권이 우리의 수중에 돌아왔으나 현재 우리 조선의 광업은 마비상태에 있어 신국가건설에 필요한 지하의 자원개발도 못할 뿐만 아니라 종래 도내 각 광산에 종사하고 있던 기술자와 조무자들도 실업상태에 빠지고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과도기의 불가피한 일시적 현상이며 우리의 정부가 수립되는 동시에는 우리 조선 광업계는 몰론 본도 내의 광업은 전도가 양양한 발전성을 가지고 있다. 현재 조선은 3,8선으로 양분되어 있고 중요한 지하자원의 태반은 북조선에 있으며 3,8 이남의 유일한 전북장항제련소는 현재 우리의 기술진으로 운영되고 있다. 본도의 우수한 동광산은 종래 그 산출량으로 보아 전국의 7% 이상을 점유하여 왔다. 과거 일제시대인 1943년도 도내의 광산실적표에 의하면 금속 광산 75개와 비금속 광산 12개 전 종업원 7336명 전 산출량이 4,611만 272톤이며 판매수량이 2,664만 8,685톤인데 판매가격은 721679원 89전에 달하였다..... 우리조선의 광업계에는 앞으로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개발의 목적을 달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방침을 수렴하여야 할 것이다1. 일반광업자 등은 그 목적과 이념을 개인주의에서 떠나 국가 중심으로 하고 영리적 견지에서 떠나 국가와 민족의 복리를 위하여 전진을 할 것이요 결코 사리사욕을 휘하는 광업자를 배격할 것. 2. 조선은 광산기술자가 부족함으로 광산기술자 단기 양성기관을 증설항 각 광산에 배치할 것이요 일반 광업자도 광업에 대한 기초지식을 획득하여 과거와 같은 많은 해와 많은 경비를 낭비하거나 개발에 지장이 없도록 할 것이요, 광업의 지식을 일반에게 보급시킬 것. 3. 각 현장 지도적 인물에 기술자를 배치하고 각자의 전문적 입장에 있어서 각 광산을 상호 순회 지도하게 할 것 4. 정부로서는 8.15 이후의 각 광산의 시설을 사업부흥에 필요한 광산에 이용하여 급속히 광물을 산출할 것 5. 노무자 임금을 조정하고 광산의 삭량과 기타 생활 필수품 등의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여 작업에 지장이 없도록 할 것. 6. 제련부문의 연구기관을 설치하여 선광제련을 계통적으로 연구할 것 7. 중등학교 교정에 광물과 광업에 관한 항목을 많이 선택하여 학도들이 이점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가지도록 교수방식을 세우고 일반의 인식을 철저히 할 것.




                   상처


                   



1946년 5월 14일 부산신문 (기사제목 : 조선에 있는 일본자산, 배상물로 남겨둔다)


재조선 일본자산19460514.JPG


동경발 합동통신 섭외국 0000 미국배상위원 애드윈 00 대사는 극동 방문의 사명을 설명한 다음에 서한을 맥아더 원수에게 제출하였다. 미국의 일본 배상위원회는 작년 1112일 양월에 의하여 일본의 평시 경제에 필요한 생산력과 장래에 있어서의 전쟁에 관계하는 생산력을 조사하였다. 그 외에 일본의 비군사화 및 금융통제의 민주화학()을 고려할 것은 중요한데 가장 광범한 구체적 변화로서 필요한 것은 일본의 공업부문에 있어서의 전쟁능력을 제 지역에서 철거하는 것이다. 본위원회의 목적은 일본과 일본이 정복한 제 지역과의 관계를 끊고 또 차등 제 지역의 경제를 재건함으로써 ... 상처



국민보 1945년 12월 12일 ( 기사제목: 일본 제조창을 압수) 


점령지.JPG


미국 배상위원이 선언한,  일본인들이 본처로 돌릴 위 점령지에서 도적한 모든 물화 중 가장 핵심은 일본군이 동양척식회사를 통해 도적질한 조선인의 토지가 되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money, money, money"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미군정이 일본 군벌파로 분류된 이왕가의 재산을 모두 한국 정부의 소유로 돌린다고 하였던 것을 보면, 이왕가가 일왕가와 합병하여 전범국가인 황국을 건설하는 데 사용된 조선의 땅덩어리 역시 한국 정부의 소유라는 것을 명백히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근대 신문 기사를 보면, 일본인이 이왕가와 합병하여 도적질한 조선인의 토지는 대만 땅 전체는 물론이거니와 만주 그리고 중국 본토에서 조선인들이 터잡고 살던 토지가 다 여기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중국 본토의 땅이 조선인의 땅이었음을 입증하는 그 대표적인 실제 사례를 들어볼까 합니다.



  1912년 7월 21일 권업신문 (기사 제목 :  좋은 토지는 다 빼앗어 )


좋은 토지.JPG


충남 회덕군 토지는 편편금옥이라. 수한(홍수와 가뭄)의 재앙을 모르는 고로 일인이 수다한 금전을 아끼지 않고 살며 근일에는 또 총독부 내무부에서 관리를 보내 국유지를 조사한다 칭하고 마침내 제일 좋은 토지를 다수히 빼앗았는데, 그 면적이 좌와 같으니, 논이 이십삼만 육천오백이십평, 밭이 사만 삼천구백팔심사평 집터가 칠천일백팔십평 황무지가 이만삼천오백구십구평 못이 이천 육백이십사평이라더라. (총 도합 : 313,907평) 


그런데일제 강점기 한반도의 행정구역 지명 ( https://www.daejeon.go.kr/drh/DrhContentsHtmlView.do?menuSeq=1716 )을 아무리 찾아봐도 회덕군이란 지명은 안 보이고 대덕구에 포함된 회덕면(회덕동)만 보입니다.  또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한반도 충남 회덕동의 대부분이 산인데 비해, 위 권업신문의 기사에서는 회덕군의 토지를 편편금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편편금옥(片片金玉)의 의미는 조각 조각의 땅이 모두 금과 같고 옥과 같아 진기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되므로 현재 한반도의 회덕면을 말하는 것이 아닌 듯 싶습니다.   현재 회덕동의 전체 면적이라고 해봤자 16.80Km(500만평정도라고 하는데, 도시 개발이 이루어지기 전인 일제 강점기에 산 주위로 논과 밭 그리고 집터와 황무지와 연못이 들어설 정도의 제일 좋은 토지가 채 30만평이 넘었을까 싶습니다.

  

회덕동.png 


그러면 도대체 위 권업신문 기사에서 언급하고 있는 충남은 어디이고 회덕군은 어느 곳에 있는 곳일까요

제가 유투브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조선의 충청도가 중국의 사천성을 의미한다"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고 있는 어떤 노학자의 동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충청도의 대략적 위치에 대해 제가 굳이  어렵게 설명드리지 않아도 될 듯하여 관련 동영상을 올려드리려고 합니다. 다만, 이 분의 강연 내용을 보면 이병도의 한씨 조선을 중국의 중심으로 상정하고 역사를 강연하고 계십니다. 이병도 계열이신 듯 합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한가지 드릴 말씀은 위 동영상 강의에서 노학자께서는, 이성계가  도읍한 한양이 무한이라고 처음에 주장하셨는데 여기저기서 반발이 많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분은 또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다는 발언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한은 근세까지도 조선인들은 물론 중국인들에게까지도 한양으로 불리워졌을 뿐 아니라 지금도 곳곳에 한양, 한강의 이름이 남아 있는 장소로, 한양은 장강으로 흘러드는 인근의 풍부한 한강수와 함께 중세 근세까지도 중국의 문화 사상의 중심지로 이름을 드날리게 됩니다.  바로 이 무한에서 신해 혁명이 성공을 하고 전 중국 땅에 엄청난 파급력을 미치게 되죠. 이 무한에 대해서는 이후 좀 더 많은 이야기를 진행하고 싶은데... 지금으로서는 제게 그럴 기회가 주어질 지는 좀 미지수입니다. 저는 사실 제 앞가림도 못하고 있는 처지이고 지금은 잠시 글 올릴 짬이 나서 ㅠㅠ )


               중국 사천성이 충청도이다.


             



위 동영상을 굳이 참고하지 않더라도, 아래 지도와 같이 지금의 사천성 바로 옆에 충칭 직할시가 있어 "충칭"이라는 지명만으로도 바로 충청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정약용은 경세유표에서 충청이라는 지명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던 지명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중국 땅에 여전히 그 이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충칭 남쪽에 첸난 부여족 묘족 자치구가 상당히 넓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충남.jpg  



위 지도를 보면, 충칭의 동남쪽을 첸둥난으로 충칭의 남쪽을 첸난으로 충칭의 서남을 첸시난으로 호칭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충칭이 충청이라면 첸동남, 첸서남, 첸남 지역이 모두 충남 지역에 포함되게 됩니다.  한편 첸난의 부이족, 묘족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묘족과 부이족은 원래 같은 민족입니다. 묘족의 역사를 파헤치면 려(黎)족이 나오는데, 려족은 바로 예족이고 혹은 배예 혹은 부여라고도 불리웠으며 모두 구려 족에 해당합니다. 고구려도 바로 이 구려족이 세운 것이고 백제라는 용어는 바로 배예, 곧 부여에서 유래한 용어입니다. 물론 "려"는 라,야, 여등의 음과 같이 섞여 쓰이게 되는데 가야, 신라 모두 같은 려족의 후예이고 단군의 자손들입니다. 


문제는 평양에 건국한 단군 조선의 후예들인 부여족이 어쩌다 저 멀리 서남쪽 땅끝까지 밀려가 살게 되었나 하는 의문이 드는데,  그 서글픈 역사를 살펴보게 되면, 또 눈물을 한 되박 쏟아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비근한 예로 위 동영상에 나타나고 있듯, 중국의 중심을 차지한 제국주의 세력들이 신봉했던 중화 사상 때문에 주변으로 밀려나 살고 있는 동족들이 식민지인 정도로 취급받을 수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 될 듯합니다.  중국의 중심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던 제국주의 세력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한쪽 구석에 쳐박혀 있는 충남 지역의 편편금옥의 땅이 무척 좋아보이고 탐이 났었나 봅니다. 


이 정도면 가히 편편금옥이라 할 만하지 않습니까?  누구나 탐낼 만한 논 밭도 보이고 집터도 보이고 황무지도, 못도 보입니다. (첸난 지역의 사진들입니다.)

msn010.gif

https://www.google.co.kr/maps/place/%EC%A4%91%EA%B5%AD+%EA%B5%AC%EC%9D%B4%EC%A0%80%EC%9A%B0+%EC%84%B1+%EC%B2%B8%EC%8B%9C%EB%82%9C+%EB%B6%80%EC%9D%B4%EC%A1%B1+%EB%A8%80%EC%98%A4%EC%A1%B1+%EC%9E%90%EC%B9%98%EC%A3%BC/@24.946375,105.034181,3a,75y,44h,90t/data=!3m8!1e2!3m6!1s66985371!2e1!3e10!6s%2F%2Flh4.googleusercontent.com%2Fproxy%2FUCZqyo_Xnv9bDsRjBeYrIixIFuJn92NeX2SnPv_N79bXo8R-fdhGe9EprzGhpErv2jA_qtqlxj02z9dqyAzn-Ywq1cY0RA%3Dw203-h152-k-no!7i3648!8i2736!4m13!1m7!3m6!1s0x35d97ad02a8e7a83:0x43bf95de6175bec0!2zWXVhbmhvdWdvdWN1biwg7Juo7J207ZuE7J20IOyLnCDsi6Dsg7kg7ZiEIO2XiOuCnCDshLEg7KSR6rWt!3b1!8m2!3d35.655362!4d113.989399!3m4!1s0x36c5fad550e32e49:0xd7414c7edcf2f7a2!8m2!3d25.0880864!4d104.907074 

편편금옥2.JPG

msn010.gifhttps://www.google.co.kr/maps/place/%EC%A4%91%EA%B5%AD+%EA%B5%AC%EC%9D%B4%EC%A0%80%EC%9A%B0+%EC%84%B1+%EC%B2%B8%EC%8B%9C%EB%82%9C+%EB%B6%80%EC%9D%B4%EC%A1%B1+%EB%A8%80%EC%98%A4%EC%A1%B1+%EC%9E%90%EC%B9%98%EC%A3%BC/@24.985847,104.92415,3a,75y,53h,90t/data=!3m8!1e2!3m6!1s66979572!2e1!3e10!6s%2F%2Flh6.googleusercontent.com%2Fproxy%2Fdxtuc6FCcyo7LdUTs8KpoAo6zvr1q55N1HmbcGSg3a7bphCDNOkey6OT0vPxBTYEc6odyYtwLzZEpCHROVs29IYqYvcCiw%3Dw203-h105-k-no!7i7813!8i4063!4m13!1m7!3m6!1s0x35d97ad02a8e7a83:0x43bf95de6175bec0!2zWXVhbmhvdWdvdWN1biwg7Juo7J207ZuE7J20IOyLnCDsi6Dsg7kg7ZiEIO2XiOuCnCDshLEg7KSR6rWt!3b1!8m2!3d35.655362!4d113.989399!3m4!1s0x36c5fad550e32e49:0xd7414c7edcf2f7a2!8m2!3d25.0880864!4d104.907074

편편금옥3.JPG

msn010.gifhttps://www.google.co.kr/maps/place/%EC%A4%91%EA%B5%AD+%EA%B5%AC%EC%9D%B4%EC%A0%80%EC%9A%B0+%EC%84%B1+%EC%B2%B8%EC%8B%9C%EB%82%9C+%EB%B6%80%EC%9D%B4%EC%A1%B1+%EB%A8%80%EC%98%A4%EC%A1%B1+%EC%9E%90%EC%B9%98%EC%A3%BC/@25.478461,105.630792,3a,75y,228h,90t/data=!3m8!1e2!3m6!1s66424643!2e1!3e10!6s%2F%2Flh5.googleusercontent.com%2Fproxy%2Fglp90A3ydZG8gul8vxbAtUgvm00XSF6MGhuL7_ra9SacTCbOou7v-PAgsipsq0DeuhefLYG-EApaDbACTXnesULjno9VAg%3Dw240-h100-k-no!7i9440!8i3923!4m13!1m7!3m6!1s0x35d97ad02a8e7a83:0x43bf95de6175bec0!2zWXVhbmhvdWdvdWN1biwg7Juo7J207ZuE7J20IOyLnCDsi6Dsg7kg7ZiEIO2XiOuCnCDshLEg7KSR6rWt!3b1!8m2!3d35.655362!4d113.989399!3m4!1s0x36c5fad550e32e49:0xd7414c7edcf2f7a2!8m2!3d25.0880864!4d104.907074

편편금옥4.JPG

msn010.gif

https://www.google.co.kr/maps/place/%EC%A4%91%EA%B5%AD+%EA%B5%AC%EC%9D%B4%EC%A0%80%EC%9A%B0+%EC%84%B1+%EC%B2%B8%EB%82%9C+%EB%B6%80%EC%9D%B4%EC%A1%B1+%EB%A8%80%EC%98%A4%EC%A1%B1+%EC%9E%90%EC%B9%98%EC%A3%BC/@26.476064,107.1681,3a,75y,158h,90t/data=!3m8!1e2!3m6!1s68919362!2e1!3e10!6s%2F%2Flh6.googleusercontent.com%2Fproxy%2F2fdGwJjOLwSXrb3lzbTbvbRpaQRcX9y1pHY8Fwt-PX3jwtC4PkIgES8dcuFy3nJ2VyG93ab6ItD77clPdL2SVq48e46UWw%3Dw203-h102-k-no!7i7927!8i3998!4m13!1m7!3m6!1s0x31508e64e5c642c1:0x951daa7c349f366f!2z7KSR6rWt!3b1!8m2!3d35.86166!4d104.195397!3m4!1s0x36bec568c7ddf93d:0xeca5bade3bc1e812!8m2!3d26.2540097!4d107.5231934



편편금옥5.JPG

msn010.gif

https://www.google.co.kr/maps/place/%EC%A4%91%EA%B5%AD+%EA%B5%AC%EC%9D%B4%EC%A0%80%EC%9A%B0+%EC%84%B1+%EC%B2%B8%EB%82%9C+%EB%B6%80%EC%9D%B4%EC%A1%B1+%EB%A8%80%EC%98%A4%EC%A1%B1+%EC%9E%90%EC%B9%98%EC%A3%BC/@25.266121,107.681479,3a,75y,333.54h,87.5t/data=!3m8!1e1!3m6!1sAF1QipMsjmmQXZDNl9vLHncYpA9R5HLCr8ZlkVG5Yspi!2e10!3e11!6shttps:%2F%2Flh5.googleusercontent.com%2Fp%2FAF1QipMsjmmQXZDNl9vLHncYpA9R5HLCr8ZlkVG5Yspi%3Dw203-h100-k-no-pi-0-ya28.22483-ro-0-fo100!7i8704!8i4352!4m13!1m7!3m6!1s0x31508e64e5c642c1:0x951daa7c349f366f!2z7KSR6rWt!3b1!8m2!3d35.86166!4d104.195397!3m4!1s0x36bec568c7ddf93d:0xeca5bade3bc1e812!8m2!3d26.2540097!4d107.5231934

편편금옥6.JPG


주목해야 할 것은, 위 권업신문은 당시 러시아령이었던 해삼위 지역(지금의 블라디보스트 윗쪽) 에 본부를 둔 신문사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권업신문에서 저 서남쪽의 부여족이 살고 있는 땅을 마치 조선인의 땅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조선 지식인들의 글을 보면 부지불식간에 중국의 영역을 한족과 삼한 민족의 영역으로 나누고 있었는데, 저 중국 서남쪽의 부여족이 살고 있는 땅을 조선의 땅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삼한 민족을 모두 같은 조선인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듯합니다. 


그런데 위의 "좋은 토지는 다 빼앗아 가" 기사가 실린 시점은 1912년 7월이었습니다. 한일합방이 된지 불과 2년 만에 충남의 제일 좋은 토지 30만평을 빼앗아갔다고 하는데, 그것은 서막에 불과 했습니다. 본격적인 토지 수탈은 그로부터 1달 후인 1912년 8월, 조선총독부의 "토지조사령 및 시행규칙" 공포와 함께 본격화되는데,  이 토지 조사 사업은 무려 7년에 걸쳐 진행이 됩니다.  이 사업은 종래 한국의 전근대적인 토지소유관계를 청산하고 근대적인 소유권을 확정하여 이를 등기제도로 보호한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농민들에게 전통적인 토지 경작권을 박탈하여 친일적 지주에게 소유권을 인정해 주거나, 미신고 토지와 광범위한 국유지를 총독부에 귀속시켜 이를 동양척식회사나 일본인 지주에게 불하하는 일이 주된 일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조선인들이 터전을 잃고 동서남북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데 이 사업이 마무리될 무렵, 경작지를 빼앗기고도 자기 고향을 뜨지 못하고 배회하는 조선인들은 땅을 빼앗은 일본인 혹은 친일 조선인들의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고향을 떠나 만주 등지로 이주하도록 내몰리게 됩니다.  제국주의 세력들은 이것으로도 모자라 수차례의 국공전쟁과 수차례의 국공합작을 거치면서, 그리고 마지막 국공전쟁을 주도하여 승리한 모택동에 의해  중국 본토에 남아있는 소수 민족들의 문화와 종교, 심지어 그들의 목숨마저 거의 초토화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중국 본토의 조선 땅에 살면서 당당하게  조선인 임을 주장하는 사람을 단 한 사람 구경조차 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2017.09.12


정윤경

 




나의 소셜 정보
powered by SocialXE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35 얼음들 새 글
정윤경
  2017-10-20
34 가슴 시린 이야기 첨부 파일
정윤경
12 2017-10-17
33 그때 또 다시 첨부 파일
정윤경
13 2017-10-16
32 거북이
정윤경
237 2017-10-05
31 고구려 벽화 무덤 첨부 파일
정윤경
87 2017-09-21
Selected 한일합방조약과 우리지방산업부흥 첨부 파일
정윤경
156 2017-09-10
29 Give It To Me 첨부 파일
정윤경
186 2017-09-01
28 애인 있어요 첨부 파일
정윤경
189 2017-08-31
27 총맞은 것처럼 첨부 파일
정윤경
186 2017-08-31
26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첨부 파일
정윤경
125 2017-08-31
25 못찾겠다 꾀꼬리 첨부 파일
정윤경
126 2017-08-30
24 NEW FACE 첨부 파일
정윤경
130 2017-08-25
23 내 생애 봄날은 첨부 파일
정윤경
144 2017-08-24
22 꿍따리샤바라 첨부 파일
정윤경
183 2017-08-22
21 money money money 첨부 파일
정윤경
152 2017-08-15
20 손대지마 첨부 파일
정윤경
175 2017-08-15
19 무영탑 첨부 파일
정윤경
151 2017-08-11
18 가시
정윤경
167 2017-08-11
17 북경아가씨 첨부 파일
정윤경
177 2017-08-09
16 깊은 밤을 날아서 첨부 파일
정윤경
185 2017-08-07
첫 페이지 1 2 끝 페이지
Tag List
목록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