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5
정윤경
조회 수 : 185
2017.09.01 (23:32:14)


   

 <꿍따리샤바라> 10번 동아일보의 여원홍 총통 기사 관련입니다. 안타깝게도 캡쳐된 여원홍 친필 글자에 덧칠이 너무 심해서 원본 글을 전혀 알아볼 수 없습니다. 기사에 대한 설명은 아래와 같습니다.


"중국 북경에 있는 조선인 고학생 상조회에서는 지난 5일에 장련읍 동부리 전석렬씨의 손을 거쳐 별항 사진과 같은 중국 전대총통 여원홍씨의 친필인 액서 일촉을 장련 광진유치원에 기증하였다."                              


        Give 

               어보.JPG  To Me


                



여

   원홍이 위 친필을 광진유치원에 기증할 즈음인 1927년 7월,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의 마지막 유지를 조선 어린이들에게 보낸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는 이유는 아래와 같은 기사 때문입니다. 


   조선신문사 1925년 2월 1일 2면 9단 기사입니다. (제목 : 제씨별부착)


                 여원홍 옥쇄.JPG




이 기사가 등장한 시기는 중국의 2차 직봉전쟁이 끝난 시점입니다.  '제섭원'이란 인물이 일본에 도착하여 별부경찰서를 찾았고, 경찰서 '5실'(고문실인 듯)에서 옥새(총통 직인)의 행방과 관련하여 취조를 받고 있는  있는 여원홍과 노영상 등에 대해 "오만방자하다"는 이유를 들어 신변상에 엄중 징계 등을 요청하였다는 내용인 듯합니다. (그 당시에는 이런 내용을 신문 기사에 막 실어올려도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던 시기였나 봅니다. ㅠㅠ)  솔직히 제가 일본어를 잘 몰라 정확한 번역이 힘이 듭니다. 그러나 제가 이 기사와 관련하여 이해하고 있는 부분은 이와 같은 기사가 실린 전후 사정입니다.


이 기사는 1925년 2월달에 조선신문에 실렸는데, 한국 임시정부에서는 그 다음달에 국민대표회의를 소집하여 박은식을 임시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또 그 다음 달 국민대표회의를 소집하여 이승만을 탄핵하는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시키게 됩니다. 이 사건이 어떻게 이승만 탄핵과 관련이 있는지는, 중국 옥새(총통의 직인)의 행방을 왜 일본 경찰이 나서서 여원홍에게 추궁하고 있는지 하는 문제와 매우 깊은 관계가 있을 듯 싶습니다. 




                      길



                    





          눈물샤워

                  

                

                  


 

 지지리도 궁상이지 애써 짓는 미소 조차 이리 울상인지 글썽이는 두눈에 맺힌 내 처량한 모습 이리 불쌍한지.  자꾸 멍해져 목젖부터 울컥거리는게 툭치면 눈물이 쏟아질것 같애 내가 나를 알기에 널 잡지 못했던 후회속에 질질 짜는 못난놈.  왜 난 너에게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없었는지에 대한 한탄 속에 왜 난 떠나 가는 너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할수 밖에 없던 자책 속에 마지막엔 알아야 했어 너의 이기적인 가슴은 다른 설레임을 원한걸. 우는 와중에도 밥은 넘기는거 보니 그래도 계속 살고 싶긴 한가 보네

 

 처음엔 한방울 한방울 그러다 왈칵 쏟아지며 한참을 쥐뿔도 뭐 없는 내 꼴을 알기에 아쉬움도 갖지 못해 한탄을 아직도 남은 네 존재를 억지로 떨궈낸 내 속이 타는데 냉정히 날 두고 떠나갈 만큼 나 형편없는  남자였나  기다려 달란 말도 지친다 기약없는 말 더는 널 묶어둘 자  신도 모면할 핑계도 댈수가 없어서 더 감추지 못한채 모자란 모습만 네게 보이고 마는데 지지리도 못나고 꼬질한 내 모습 눈물로 씻어내 보낸다

 

 애꿎은 눈물만 흘리는 날 놔줘 네 품이 아닌 곳에 이제 날 놔줘 후회와 지나간 날들의 기억속에 갇혀 가슴 아픈 나~ 청승 맞게 불꺼 놓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 놓고 베개 위에 얼굴 엎어 놓고 샤워해 샤워  눈물 샤워 청승 맞게 불꺼 놓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 놓고 베개  위에 얼굴 엎어 놓고 샤워해 샤워 눈물 샤워 




이야기를 진행하기에 앞서 먼저 여원홍의 소재가 일본에서 발견된 시점인 1925년의 중국 지도를 소개드려야 할 듯합니다.  참고로 아래 지도상의  빨간 박스는 북경 지역입니다. 북경 인근이 풍옥산의 영역과 장작림의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후일 남조선 북조선 관련 부분에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지만, 이 지역은 청나라 건국 이후 남조선과 북조선을 가르는 주요 경계점 역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위키백과 : 군벌시대 / msn010.gif https://ko.wikipedia.org/wiki/%EA%B5%B0%EB%B2%8C_%EC%8B%9C%EB%8C%80 msn010.gif 

군벌지도.JPG



1922년 6월, 중화민국의 대총통 서세창이 퇴위한 후 여원홍이 중국 대총통직을 승락함에 따라 그는 1916년에 이어 두번째 중국 대총통직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임기는 1년 반이었습니다. 

앞의 "NEW FACE"에서 올려드린 려원홍의 얼굴이 새겨진 오족공화 기념 주화에서도 확인되듯 그의 임기 동안 중국의 국기는 오색기였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오색기>

오색기.png


위 오색기는 중국의 다섯부족을 상징하고 있으며, 다섯부족이 화합해서 사는 중국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신해혁명이 성공한 다음 해인 19121월, 신해혁명의 또다른 주역 손문이 임시대통령으로 있던 중화민국 남경임시정부의 참의원은 각계의 일치된 의견을 받아들여 오색기를 중화민국의 국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오색기는 19281217일 이후 사용이 중단되게 되고, 이후 중국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중국 역사에서 1928년은 매우 중요한 시기이기도 한데, 신해혁명의 주역인 여원홍은 물론이거니와 중국 대륙의 북방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던 조선인 군벌 장작림이 사망한 시기이며, 여원홍이 일본 경찰서에 잡혀 있을 때 사망한 손문의 후임을 자처한 장개석의 소위 북벌”이 성공했다고 평가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조선에서는 "사진을 보다가"에 등장하는 문제의 동아일보 달력 사진이 공개되기 전 해이기도 합니다. 이 때부터 중화민국의 국기는 아래와 같은 청천백일기로 바뀌게 됩니다.


 청천백일기.JPG     우측은 현재 중화민국 국기의 모습입니다.  중화민국.JPG

 

 


여원홍이 총통직에 오른 지 1년이 채 되기 전부터,  위 지도상의 풍옥상의 영역을 관할하고 있던 소위 직례파의 군인 조곤(曹錕)이 차기 총통 자리를 노리고 도전할 계획이라는 기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한편으로는 그의 신분은 군인이었고, 당시 법해석상 군인은 총통 선거에 나설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위에서 백과사전의 지도 그림을 인용하였지만, 사실 백과사전에 기록된 당시의 상황과, 같은 시점 여러 신문 기사에 등장하는 사건 기록들이 상당히 차이를 보이는 시점도 바로 이 시점입니다.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백과사전에 소개된 조곤(曹錕)에 대한 설명 중 관련된 부분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차오쿤(조곤 曹錕) https://ko.wikipedia.org/wiki/%EC%B0%A8%EC%98%A4%EC%BF%A4  >

당시 중화민국의 총통선거법의 규정에 의하면 총통선거에는 양원의 재적의원 2/3의 참석이 있어야만 개시할 수 있었다당시 국회의원은 정원이 870명이었고규정에 의한 출석의원 수는 580명이었다차오쿤은 돈을 뿌려서 이 국회의원을 매수하고경찰과 헌병을 동원하여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갖은 부정선거 끝에 총통에 당선되었다....... 차오쿤은 "공민당(公民團)"이라는 깡패조직을 앞세워서 텐안먼에서 집회를 열고 여원홍에게 즉각 하야를 요구하였다후에 풍옥상(馮玉祥등에게 3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여원홍의 관저에서 봉급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라고 시켰다그리고 풍옥상에게 군대를 이끌고 베이징으로 가서 려원홍의 관저를 단전단수시킨후, 려원홍을 협박하여 텐진으로 도피하도록 하였다.그리고 차오의 일파는 직례성(直隸省)의 성장인 왕청빈에게 여원홍이 탄 기차가 텐진에 서면 그를 감금하고 그가 총통직인을 내놓으면 석방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신문 기사에 소개된 당시의 사건 정황은 이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당시의 긴급했던 상황들을 보도한 신문 기사의 내용들을 시간대별로 열거해보겠습니다.


(계속)













나의 소셜 정보
powered by SocialXE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35 얼음들 새 글
정윤경
  2017-10-20
34 가슴 시린 이야기 첨부 파일
정윤경
12 2017-10-17
33 그때 또 다시 첨부 파일
정윤경
13 2017-10-16
32 거북이
정윤경
237 2017-10-05
31 고구려 벽화 무덤 첨부 파일
정윤경
87 2017-09-21
30 한일합방조약과 우리지방산업부흥 첨부 파일
정윤경
156 2017-09-10
Selected Give It To Me 첨부 파일
정윤경
185 2017-09-01
28 애인 있어요 첨부 파일
정윤경
189 2017-08-31
27 총맞은 것처럼 첨부 파일
정윤경
186 2017-08-31
26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첨부 파일
정윤경
125 2017-08-31
25 못찾겠다 꾀꼬리 첨부 파일
정윤경
126 2017-08-30
24 NEW FACE 첨부 파일
정윤경
130 2017-08-25
23 내 생애 봄날은 첨부 파일
정윤경
144 2017-08-24
22 꿍따리샤바라 첨부 파일
정윤경
182 2017-08-22
21 money money money 첨부 파일
정윤경
152 2017-08-15
20 손대지마 첨부 파일
정윤경
175 2017-08-15
19 무영탑 첨부 파일
정윤경
150 2017-08-11
18 가시
정윤경
166 2017-08-11
17 북경아가씨 첨부 파일
정윤경
176 2017-08-09
16 깊은 밤을 날아서 첨부 파일
정윤경
184 2017-08-07
첫 페이지 1 2 끝 페이지
Tag List
목록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