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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4 (22:19:29)


 

                          <하도>                                                              <낙서>


하도 중앙.PNG                          낙서 중앙.PNG



위 하도와 낙서의 차이점을 비교해보면하도 가운에 황토색 원형 안에는 가운데 정 중앙에 숫자 5()가 있고 그 주변을 숫자 10()가 둘러 싸 서로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낙서와 하도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낙서에는 하도에 보이는 숫자 10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천지 대자연의 본연지성은 숫자 10을 포함하고 있지만사람이 천지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기질지성에는 이와 같은 10의 수가 결여되어 있는데이 숫자 10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동양의 상수(像數철학에서는 주렴계의 태극도설에 등장하는 무극과 태극을 각기 숫자 10 1로 대체하여 표시하여 왔습니다. ‘무극이란 천지 만물이 만들어지기 전의 혼돈 상태로노자 식으로 표현하자면천지 자연이 탄생하기 전의 텅 비어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무극즉 텅빈 상태가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지는 노자 도덕경에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고 있는데노자는 텅빈 공간을 언급하면서 숫자10을 여기에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도덕경 11장을 보면, “수레바퀴에 달린 ‘30(三十)’개의 살이 모두 바퀴의 안쪽 테인 곡()으로 모이고그 곡의 한가운데 뚫려있는 빈 구멍에 축()을 넣어야 수레가 제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되어있는데여기서 등장하는 숫자 30  숫자 3에 숫자 10이 더해진 숫자로노자는 숫자 3에 대해서는 도덕경 42장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도가 1을 생하고 1 2를 생하고 2 3을 생한 연후, 3이 만물을 낳는다.” (道生一一生二二生三三生萬物.)

 

(가 숫자 3에 이르러 비로소 만물을 낳는다는 것이죠.

 

수레바퀴에 달린 30개의 바퀴 살은만물을 낳는 숫자 3에 무극 수인 숫자 10이 곱해진 숫자로 30개의 바퀴 살은 모두 중앙의 텅 빈 공간을 향해 모아지면서 이곳으로부터 동력의 원천을 제공받고 있습니다.

 

노자의 이와 같은 수레바퀴 이론을 하도에 적응시켜 보면하도의 중앙에 보이는 숫자 5는 숫자 10과 대응하여(곱해져숫자 50이 만들어지는데,  이 숫자 50은 내단 수련을 하는 사람에게 적응하여 보면숫자 50이 몸의 중앙에 있는 마음의 텅빈 공간을 향해 모아지면서 비로소본연지성의 수레바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

 

수레 바퀴의 중간에 비어 있이 있기 때문에 수레바퀴가 돌아갈 수 있는 것처럼사람이 내단 수련을 통해 본연지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수레바퀴의 가운데가 비어있는 것처럼 몸의 중간에 있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을 뜻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노자가 말하고 있는 "그 마음을 비운 후에그 배를 채운다(허기심실기복)"의 구체적인 내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내단 수련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문제는 어떻게 해야 마음을 비울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마음은 수레바퀴처럼 눈에 보이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이를 비우는 구체적인 방법을 이끌어내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됩니다당장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마음을 비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일은 없겠지만이미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서그때부터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낳으면서,마음이 복잡해지게 됩니다.  

 

하도, 낙서의 숫자와 그림으로 이해하더라도대략 1~9에 관한 것들은 우리 몸 구석 구석을 찾아보면그와 관련된 징후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이 되는데정작 마음 비우는 것과 관련된 무극 수 10은 그 자체가 텅 빈 ’, ‘의 정신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사람의 몸 밖 3차원의 물리적인 세계를 초월해서 존재하게 됩니다.

 

비록 내단 수련이 물리적인 원리에 의거해 기계적으로 사람의 몸의 기운을 돌리는 수련 과정이라 할 지라도마음을 여기서 배제시킨다면,제대로 된 내단 수련이 시작조차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이죠 .

.

그러면 이처럼 형이상학적인 영역에 속하는 마음 비우는 일을내단 수련 과정에서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겨나게 됩니다.  

 


사실 노자가 먼저 마음을 비운 연후에 그 배를 채운다고 한 허기심실기복이란 말구절 앞에는 성인의 통치라는 말이 등장합니다노자는 허기심실기복을 언급하면서,

  

馳騁畋獵令人心發狂(치빙전렵령인심발광) : 말달리기 사냥하기로 사람의 마음이 광분하고

難得之貨令人行妨(난득지화령인행방) : 얻기 어려운 재물로 사람의 행동이 그르게 된다

是以聖人爲腹(시이성인위복) : 성인은 배를 위하고 

不爲目(불위목) : 눈을 위하지 않는다

 

라고 말합니다이는 그의 정치 철학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부분인데사람을 무한 경쟁으로 내모는 신자유주의 사조와는 매우 거리가 먼 철학임을 알 수 있습니다그의 도덕 정치 사상을 현실적인 정치에 대입을 해보면 아마도 복지 국가 시스템과 가장 가깝지 않나 생각됩니다

 

사실어떻게 보면 마음을 비우는 영역은 한 개인이 감당해야 할 일이라기 보다는,  정치 시스템이 일정 부분 그 역할을 담당해주어야 할 영역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외물(外物), 즉 마음 밖의 세상과 만나면서 순식간에 천갈래만갈래 갈리면서 번잡스러워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이런 이유로 노자장자의 사상이 세상으로부터 은둔하는 은둔 사상이 아니라 적극적인 통치 이념을 담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기도 합니다.

 

유교의 통치철학에서는, 중국 역대 최고의 성인의 통치를 이끌어냈다고 평가 받는 요임금 시대백성들은 임금의 힘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라며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열심히 자신의 배를 채우며 삶을 살아간다는 내용이 담긴 고복격앙가(鼓腹擊壤歌) 허기심실기복 정신에 비유될 수 있다면도교의 내단 수련에서는 이 마음 비우는 문제가  호흡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노자는 이 마음 비우는 방법을 도덕경 12장에서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습니다 .

 

五色令人目盲 (오색령인목맹) : 다섯 가지 색깔로 사람의 눈이 멀게 되고

五音令人耳聾(오음령인이롱) : 다섯 가지 음으로 사람의 귀가 멀게 되고

五味令人口爽(오미령인구상) : 다섯 가지 맛으로 사람의 입맛이 고약해진다

是以聖人爲腹(시이성인위복) : 성인은 배를 위하고 

不爲目(불위목) : 눈을 위하지 않는다

故去彼取此(고거피취차) : 그러므로 후자는 뒤로하고 전자를 취한다

 

성인은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하여위와 같이 오감을 동원한 감각기관에 지나치게 자신의 정기를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사람이 이목구비로 느끼는 감각과사람의 배를 채우는 일이 완전히 배치되는 부분임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당나라 때 신선 여동빈이 가르친 바를 기록해둔 문헌인 태을금화종지에 의하면내단 수련은 마음과 기를 닦는 일이를 배우고 익히려면 반드시 마음의 변화와 움직임을 여의고 조용히 하여야 하며잡된 것이 섞이지 아니하고 순수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의 변화와 움직임을 여의고 조용하 하게 되면태어나기 이전부터의 참다운 숨에 접근하게 되는데물론 그 참다운 숨은 사람의 입과 코로 쉬는 호흡에 붙어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입과 코로 쉬는 호흡이 참다운 숨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호흡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마음으로만 알고 있어야지 귀에 소리가 들려서는 안된다고 합니다호흡이 나가고 들어오는 소리가 귀에 들리면 기가 거칠어지고거칠어지면 흐려지고 흐려지면 저절로 어두움 속으로 빠져 잠이 오게 되지만 귀에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호흡이 가늘어지고 가늘어지면서 맑아져 참다운 호흡에 접근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노자의 도덕경의 위 12장 구절을 이해한다면호흡을 하는 동안 호흡 소리가 귀에 들려 오감(五感)이 작동이 되면그런 호흡으로는 배를 채울 수 없다는 것이기도 하죠

 

왜 오감(五感)이 작동을 하면배를 채울 수 없는지에 대해서는북창 정렴의 용호비결에서  자세히 언급되고 있습니다.

 

(참동계를 말함)에 이르기를 사심을 버리고 허무로 돌아가서 항상 무념으로 변화되어가는 스스로를 증험하여마음이 한길로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는 것이 선()을 수련하는데 처음의 길이라 하였다거스르지 않고 운행되면 사람이 되고거슬러 올라가면 신선이 된다고 하였으니처음 하나에서 둘이 생기고 둘에서 넷이 되고넷에서 여덟이 되며그것이 육십사에 이르게 되면 만가지 일로 나누어 지게 되어 인도(人道사람의 길)를 이룬다다리를 포개고 바르게 앉아서 눈을 지그시 감고 만가지 어지러운 일을 거두어들이고 생각을 멀리하면 아무것도 없는 하나로 돌아가게 되어 태극에 이르게 되니 이를 선도(仙道, 신선의 길)라 한다.”

 

호흡소리가 귀에 들려서 귀로부터 처음 하나의 감각이 생기게 되면하나의 지각은 두개로 둘은 넷이 되고 넷이 여덟이 되며 여덟이 육십사에 이르게 되어 만가지 일로 나누어 지게 된다는 것이죠마음을 비우지 못한 채 진행하는 호흡은 사물의 일리만수(一 理萬殊하나의 이치가 만가지로 벌려짐)  법칙의 시작점으로 작용하여마음과 몸을 오히려 어지럽힐 뿐입니다천지 자연의 본연지성을 회복하기 위해 내단 수련을 하면서도 이처럼 마음이 감각기관의 작동으로 어지럽혀지게 되면오히려 천지의 운행의 쓰임이 되고 말기 때문에신선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렴은 만가지 어지러운 일을 거두어들이고 생각을 멀리하고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돌아가야 비로소 선 수련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김시습은 복기(단전에 기를 채움)를 위한 호흡을 다른 말로 영기(迎氣) 라는 말로 표현합니다영기(迎氣)라는 것은말 그대로기를 맞아들이는 것인데이 기는 호흡을 통해 훔쳐 온 천지 자연의 정기를 말합니다

 

그는 영기(迎氣)에 대해 설명하면서 기로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외부와의 인연을 끊고 온갖 잡사(雜事)를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물론 이 잡사를 버리는 일은 곧 마음을 텅 비게 만드는 일을 말합니다.. 그리고이를 위해서는 오신(五神, 심장 , 간장비장 폐장신장을 지키고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정좌 한 연후몸과 마음이 편안해진 후 내시법(內視法)을 익혀 마음의 눈으로 오장을 들여다보면, 마치 오색(五色)이 똑똑하고 분명한 것 같이 기의 모양이 선명해지는데마음의 눈으로 단전에 모인 가 위로 이환(泥丸뇌신) 에 들어 가고 아래로 용천(湧泉)에 도달하는 것을 본다고 합니다.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기를 맞이하는 것은 기를 얼마만큼 느끼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이죠기가 정말 배에 채워졌는지 안 채워졌는지얼마만큼 채워졌는지또 내 뱃속 어느 정도 깊이까지 들어갔는지또 얼마만큼 더 채워 넣어야 하는지또 얼마만큼 더워졌고얼마만큼 단단히 뭉쳐졌는지채워진 기가 내 몸 어디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또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 없다면후일 온 몸에 기를 운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됩니다내단 수련은의식적으로 기가 움직일 길을 열어주고 또 기를 온 몸 이곳 저곳에 유통시키면서 의도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내는 수련이기 때문입니다.

 

기는 이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생명에너지이지만질량을 갖지 않은 비물질적인 에너지여서 눈에도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으며 저울에 달아도 무게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고 오직 느낌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자신이 느끼는 만큼 기가 뱃 속에 채워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단 수련을 하면서 기감을 느끼는 것은 호흡만큼이나 중요하게 됩니다

 

김시습은 이처럼 기를 맞이하는 문제즉 천지 자연의 정기()를 느끼고 받아들이는 문제를 마음 비우는 문제와 직결시키고 있는데마음의 눈으로 천지 자연의 정기를 들여다본다고 말한 것을 보면 기는 마음의 눈으로만 보이는 것이지우리의 오감이 사물과 접촉하여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목구비를 통한 오감으로 느껴지는 세상과마음의 눈으로 맞이하는 기의 세상의 차이점은전자는 사람의 배를 채워주지 못하고 마음을 번거로운 일에 빠져들게 하지만영기(迎氣)를 통해 천하의 정기를 마음으로부터 느끼고 받아들여 그에 순응하면사람의 이목구비가 내 몸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가 내 몸의 주인이 되게 되고 마음은 저절로 기의 움직임을 따라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신선이 기를 먹는 법이라고 설명합니다 .

 

그치지 말고 그대로 아침에 일어나 동쪽을 바라보고 두 손을 무릎 위에 펴 놓고 반드시 기를 뱃속으로 들여 보내는데그것은 기가 주인이 되게 함이요이것이 신선이 기를 먹는 법이다.”

 

보통 마음을 무작정 비우겠다고 마음 먹으면비워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 자체부터가 하나의 시작점이 되어 그로부터 수도 없는 만 갈래 번화스러운 일들이 마음을 어지럽히게 됩니다.

 

그런데 내단 수련에서는 무작정 마음을 비우라는 것이 아니라영기 즉 기를 내 단전 안에 채우고 그 기로 하여금 단전 안의 주인이 되게 한 후 아주 고요한 가운데 그 기의 움직임에 집중하다 보면 저절로 잡사와 번거로운 일들이 물리쳐지게 된다는 것이죠.

 

 

 

내 뱃속에서 일어나는 기의 변화를 느낄 정도가 되려면어느 정도 뱃속에 든든하게 기가 채워져 있어야 하는데기를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단전 안의 텅 빈 공간을 찾아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노자가 언급하고 있는 하늘과 땅의 근원으로 써도 써도 다할 줄 모른다고 언급한 현빈지문(玄牝之門)단전(중극혈)에 있는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마치 블랙홀처럼 그 안에 기를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이 기가 채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谷神不死(곡신불사) : 계곡의 신은 결코 죽지 않는다

是謂玄牝(시위현빈) : 그것은 신비의 여인

玄牝之門(현빈지문) : 여인의 문은

是謂天地根(시위천지근) : 하늘과 땅의 근원

綿綿若存(면면약존) : 끊어질 듯하면서도 이어지고

用之不勤(용지불근) : 써도 써도 다할 줄을 모른다

 

다만단전에 최대한의 기를 채워 넣기 위해서는먼저 마음이 비워져 있어야 하는데,  기를 채워야겠다는 마음마저도 비워내야잡사가 머물 여지가 없어지고기가 그곳의 주인이 되고 마음의 변화와 움직임이 조용해지게 됩니다.

 

도교의 고전인 ‘장자’의 지북유편을 보면사람의 삶이란 기가 모인 것으로 “기가 모이면 살고 기가 흩어지면 죽는다”고 말합니다.  천지 자연의 삶이 영속성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그 기가  처음 탄생한 이후변화하고 움직이는 가운데한번도 흩어진 적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단 수련은천지 자연의 정기로 하여금 내 몸의 주인이 되게 하는 과정인 만큼수련 과정 중에 일어나는 몸의 변화는 전부 기의 움직임과 관련되어 설명되어질 수 있는데어느 정도 기에 대한 감각이 생겨나면 그 기를 운용을 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먼저 기를 운행하기 전에기의 운용 과정에서 일어나는 아래의 두 가지의 변화와 그 느낌에 대해서는 수련자가 반드시 꿰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기가 지나는 길이 막혀 있는지 아니면 뚫려있는지에 관한 것이고하나는 기의 뜨겁고 차가운 성질에 대한 차이를 구분해내는 일일 것입니다.

 

기가 지나가는 통로가 막혀 있는지 뚫렸는지에 대한 구분이 없으면 막힌 기혈 경혈 맥 등을 뚫어주는 데 어려움이 생겨서아예 단 수련 자체가 불가능하게 됩니다.

 

노자 48장을 보면 도를 닦는 것은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며덜어내고 덜어내다 보면 무위에 이르게 된다"고 합니다.

 

덜어내기 위해서는 그곳이 채워져 있는지 비어있는지를 알아내야 하는데만약 막혀 있다면그 안이 무언가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의미로,이 채운 것을 덜어낸다는 것은 막힌 곳을 뚫는 것과 같은 의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마찬가지로 더운 기운이 있어야 할 자리에 차가운 기운이 있다면차가운 기운을 본래의 자리로 돌려줘서 물과 불이 조화를 이루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하게 되면몸 안의 기혈 경맥이 완전히 소통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고마음 속으로 기를 운행하려고 하는 의지 만으로도 그 자리에서 기가 알아서 소통되고 동시에 저절로 수승화강이 일어나는 단계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이처럼 무위의 상태에서도 저절로 기가 본연지성에 따라 유통이 되는 단계에 이르려면 지속적인 의지를 가지고 날마다 조금씩 소통을 막고 있는 부분의 기운을 덜어내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노자는 항상 무위를 강조하지만이 무위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는, “의지를 가지고 덜어내는 일을 날마다 반복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어떻게 하면 막혀 있는 곳의 가득 찬 곳을 덜어내줄 수 있나 하는 문제가 대두되게 됩니다.

 

사실 기를 운용하다 보면기가 지나갈 통로가 조금만 열려있어도 그곳을 타고 기가 유통이 되면서 주변의 막힌 곳까지 덩달아 뚫려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문제는 아주 꽉 막혀서 전혀 기가 소통이 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처럼 꽉 막혀 있는 통로를 뚫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도교 문헌으로 제가 알기로여동빈이 전했다는 태을금화종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태을금화종지에서는, “회광(빛을 모음)”의 원리를 특히 강조하는데기가 막힌 곳에 두 눈의 시선을 모아 빛을 쏘아서 막혀있는 곳을 집중적으로 비춰주면결국 막힌 곳의 음기가 때가 불려지듯 불려서 벗겨지면서 환해지고 동시에 막힌 기가 통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가 유통되는 통로를 막고 있는 것을 전부 묶어서 음기(묵은 찌꺼기)라고 지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자 제36장에서 "들이 쉬려고 하면 먼저 내쉬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기혈 경혈 맥에 기를 소통시키기 위해서막힌 부분에 코 끝을 대고 면면약존하게 숨을 내쉬는 방법도 있습니다물론 이 방법들은단 수련을 할 때 시선을 코끝에 둔다고 한 원칙을 되새겨보면결국 기가 막힌 곳에 코끝을 대고 날 숨을 내쉬는 것이나코끝을 따라간 감은 두 눈의 시선이 막힌 부분을 지속적으로 응시하는 것이나 서로 크게 다른 방법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방법들이 있을 수 있는데그것은 제가 여기서 다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들은 아니고그 효과도 각자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하지만이 과정에서 마음 하나만은 순수하고 잡된 것이 섞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이 말은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기의 움직임에 마음을 쏟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단 수련을 하면서처음 기를 운용하여 먼저 막힌 곳을 뚫어주어야 할 곳은 바로 임맥입니다.

 

단전에 정기를 모으게 되면그곳에서 더운 기가 뭉치게 되는데이곳에서 뭉쳐지지 못하고 떠도는 차가운 기는단전 기운에 밀려서 임맥을 타고 위로 올라오게 되어 있습니다그런데임맥이 처음부터 막혀 있게 되면아랫배의 차가운 기운이 배출되지 못한 채단전 주위를 계속 겉돌면서단전 안에서 기가 뭉치는 것을 방해하거나단전 주변의 냉기를 유발하고아랫배 근육을 딱딱하게 굳게 만드는 등 부작용을 유발하게 됩니다노자가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비워야 한다고 하였는데이는 단전을 채우기 위해서는 단전이 위치하고 있는 임맥이 막혀 있는 것을 먼저 열어줘야 한다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단 수련을 하는 과정 초기에당장 하복부의 차가운 기운을 위로 올려 보내주는 통로인 임맥을 뚫어줘 나갈 필요성이 대두됩니다.

 

기존 내단 수련법에서는 코 끝을 단전에 대고 날숨을 귀에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천천히 조금씩 내쉬어준다고 하였는데저는,임맥을 열어주기 위해서는 날숨을 바로 단전에 불어주는 것이 아니라, 코 끝을 코 아래 임맥의 끝 지점인 은교혈, 승장혈에 대고, 날숨을 내쉬며 임맥의 막힌 혈을 뚫어 주는 것으로부터 단전 호흡이 시작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 얼굴 위의 임맥>

얼굴 위의 임맥.PNG  

 

은교혈은 입술 안쪽 윗 잇몸과 윗 입술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혈로, 두 눈을 감고은교혈에 기를 모아보면기가 잘 안 모인다는 느낌이 드는데그것은 얼굴의 기혈 경맥들이 굳어 있기 때문으로 간단한 얼굴 마사지를 한다든지얼굴 안면 운동혹은 얼굴 진동 운동 등으로 굳어 있는 경혈들을 풀어주고 난 후 기를 모아보면 한결 기가 중심을 향해 모여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시선은 코 끝을 응시한 채, 천천히 날숨을 내쉬면서 코 끝을 은교혈로부터 승장혈을 거쳐임맥을 거슬러 단전까지 한번에 내려오도록 합니다.  이때 날 숨이 단전까지 내려오지 못한 채 중간에 끊어지게 되면더운 기가 다시 임맥을 타고 위로 역상할 수 있기 때문에날숨의 끝이 단전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날숨이 단전에 이르게 되면임맥 상에서의 날숨과 단전 상에서의 날숨의 차이에 대한 감각의 차이가 느껴지는데임맥 상에서는 한번 내쉰 날 숨이 곧 끊어질 것 같다가도단전에 이르게 되면 숨이 다시 살아나고 깊어지는 경우를 겪게 됩니다.

 

임맥을 역행하여 날숨을 내쉬면서 단전까지 내려오는 일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코 끝의 내쉬는 숨혹은 코끝을 따라다니는 마음의 눈 빛에 의해 막힌 임맥과 임맥 주변의 경혈이 순간적으로 열리면서 아래에 적체되어 있는 차가운 기운이 쪼로록혹은 졸졸거리면서 위로 올라오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북창 정렴이 말한 풍사가 걷히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단전에 더운 기가 모이게 되면, 하복부에 머물던 차가운 기운이 더운 기운에 의해 밀려나면서, 단전 주변 부위, 심하면 하복부 여기 저기로 쏠리며 뭉치게 되는데, 이 차가운 기운이 가야 할 방향은 아랫 방향이 아니라 윗 방향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수련을 하시면, 한결 도움이 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단전에 더운 기운을 집중시키고, 단전 주변과 상복부, 그리고 배꼽 주위와 임맥의 긴장을 풀어주면이 차가운 풍사가 임맥이 열린 지점까지 날아올라오게 됩니다.



<정면에서 바라본 단전>


단.PNG



위 그림은 앞에서 바라본 단전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다른 문헌에 나오는 내용은 아니고, 제가 단전 수련을 하면서 느낀 기감을 서투른 그림 솜씨로 표현한 것입니다. 단전 안에 입체 도형을 삽입하느라 고생을 했는데, 단전의 내부를 입체 도형으로 이해하고 보면, 단전의 윗 부분은 몸의 상체에 있는 장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단전 안에 더운 기운이 차게 되면, 이 더운 기운으로 단전 안의 상하좌우앞뒤를 따뜻한 햇볕을 쪼이듯 모두 골고루 덥혀줘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일종의 화후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단전의 더운 기운으로 단전 내부의 각 면들을 덮혀주다 보면, 단전 주변의 찬 기운이 견디지 못하고 위로 올라오게 되어 있는데, 도교에서는 이 기운을 약기운이라고도 합니다. 몸에 약이 된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회음혈에서 솥을 깔고 화후를 했을 때에도 여기서 약기운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졸졸 올라오던 차가운 기운은보통 가슴 정도에서 더 이상 위로 올라오지 못하고 정체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그 이유는 목과 얼굴 안면 쪽의 임맥이 꽉 막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막힌 임맥은 화후의 과정에서 생겨난 적룡의 기운이 위로 올라오는 길을 막아버리기 때문에, 미리 미리 단전 호흡을 하면서 임맥을 열어 나가줘야 합니다.

 

적룡에 대해서는, 앞서 김시습의 용호론을 언급하면서 잠깐 말씀드린 바 있는데, 바로 임맥을 타고 올라오는 기운을 말합니다.

 

 

                             <하도 + 낙서 순환도 II >


 

하도 + 낙서 수정6.PNG

위 그림을 보면, 단전에서 치골을 뚫고 내려온 기는 세가지 형태로 존재하게 됩니다. 하나는 단전에서 불을 안으로 감싸는 역할을 했던 쇠금()의 성질, 그리고 원래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차가운 물기운, 그리고 단전에서 모아진 따뜻한 불기운입니다.

 

이 세가지 기운은 단전에서 서로 어우러지다가, 치골을 뚫고 내려오는 순간 어지러이 뒤섞이게 되는데, 그때 재빨리 위의 그림과 같이 물 기운을 위로, 그리고 불 기운을 아래 쪽으로 밀어내고 이 불과 물이 어지러이 섞이지 않도록 그 사이에 단전으로부터 흘러나온 금액을 깔아줍니다. 이 금액이라는 말은, 참동계의 다른 주석서로,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출간된 참동계천유라는 문헌에서 솥 가운데 금액이 있다고 표현한 부분을 인용한 것인데, 그런 이유로 위 그림에서는 솥을 노란 금색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위 그림을 보면, 사람 몸의 아랫 부분에 해당하는 지점은 하도나 낙서나 모두 1수(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는 바로 사람 몸의 회음혈 자리인데, 지구로 치자면 북극에 해당하는 부위로, 만물이 꽁꽁 얼어있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내단 수련 중에 단전에 모아진 더운 기가 회음혈로 들어서게 되면, 단전의 더운 기운과 회음혈의 차가운 냉기가 만나게 되는데, 이 때 더운 기와 차가운 기의 온도 차가 배가(倍加) 되면서 회음혈 주변에서 엄청나게 시린 한기를 느끼게 됩니다. 이 시린 한기를 하단전의 더운 불로 덥혀주게 되면 한기가 온 몸으로 뻗치기도 하는데, 만약 단전의 기가 아직 숙성이 덜 된 상태에서 억지로 회음혈로 기를 내려 보냈다가 자칫 이 냉기를 잘못 건드리게 되면, 더운 불 기운이 회음혈로부터 터져 나오는 냉기에 완전히 제압당하게 되기 때문에, 이 부분은 많은 주의를 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위 그림에서 보듯 신체 하부의 금액(), 냉기의 본처이기도 한 회음혈에서부터 독맥을 타고 장강혈을 거쳐 넓게는 요유혈, 요양관혈에 이르는 부위까지 고루 펴줘야 합니다.

 

                    <화후를 위한 독맥 상의 중요 혈들>


독맥.PNG

   

그러고 보면, 솥은 단전의 불이 지나치게 뜨거워 위로 치솟아 오를 때 위에서 덮어씌워 감싸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단전의 기가 회음부로 내려왔을 때, 이 기를 독맥으로 돌리는 과정에서 화후(火候차가운 물 기운과 더운 불 기운의 조화)를 불러 일으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죠

 

평상시는 머리에 솥을 뒤집어 쓰고 다니다, 배가 고프면 솥을 내려 놓고 그 안에 물을 넣고 솥 밑에 불을 때서 밥을 해먹었던 토정 이지함을 연상하면 이 내용이 조금 쉽게  이해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위 하도 그림에서, 신체 앞 부분을 의미하는 하도의 3,8()이 중간 토()를 매개로 하도의 4,9()과 이어지고 있는 모습, 그리고 신체의 하부를 의미하는 하도의 1,6()가 중간 토()를 매개로 맞은 편 낙서의 9 ()을 불러들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단전과 회음혈 부분에서 물과 불의 조화를 이루어주는 9()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솥은, 갑자기 없던 것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에 원래부터 내재되어 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솥을 주역참동계에서는 솥 정()으로 표현하는데, 이 정()은 주역의  64괘 중 하나인 화풍정(火風鼎)의 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주역에서는 이 정()을 설명하면서 ()의 쓰임은 물건을 변혁하는 것이니, 날고기를 변화시켜 익게 하고, 단단한 것을 바꾸어 부드럽게 한다. 물과 불은 가히 함께 처할 수 없는데, 솥이 능히 이들을 서로 합하여 쓰임이 되게 하고 서로 해치지 않게 하니, 이는 솥이 사물을 변혁하기 때문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鼎之爲用 所以革物也 變腥而爲熟 易堅而爲柔 水火不可同處也 能使相合爲用而不相害 是能革物也 )

 

동양에서는 오랫동안 이 솥 정자를 바른 지위에 () ()”으로 여겨왔는데, 세개의 다리를 갖춘, 흔들림 없는  안정적인 권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내단 수련의 중요한 과정인 화후 수련에서, 이 솥이 큰 쓰임이 되는데, 화후란 원래 문무화후(文武火候)에서 나온 말로, 문무화후는 차를 끓여 먹는 문화와 관련이 있다는 말씀은 앞서 언급 드린 바가 있습니다. 차를 맛있게 잘 끓이는 요령은 불기운과 물기운을 적절히 조화하여 잘 다스림으로써 그 중화의 불기운을 얻어야 차 맛의 진수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회음혈로 내려온 물과 불의 기운이 솥에 의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연후에 비로소 화후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내단 수련 과정에서 이 솥이 제대로 자리를 잡게 하려면, 무엇보다 수련 초기에 앉은 자세가 바로 잡혀야 합니다. 물론, 자세를 바로 하여, 솥이 걸린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꼭 가부좌를 한 자세가 아니더라도 무방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솥이 걸린다는 느낌을 알기 위해서는 처음 가부좌를 하고 앉아 수련을 할 때엉덩이와 허벅지를 바닥에 철퍼덕하고 주저앉듯이 앉는 것보다는 허벅지와 엉덩이의 꼭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바닥에서 약간 들려 있는 듯한 느낌으로 앉아야 하는데, 그래야 회음부 주위의 중요한 기혈 기맥이 유통이 되면서 물과 불의 조화의 작용이 일어나고, 다리가 저리는 일도 덜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회음부 주위의 중요한 기혈 기맥이 유통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허벅지에서 발바닥 용천혈에 이르는 다리 전 부위의 기맥이 먼저 유통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실제 단전에서 회음혈을 거쳐 독맥으로 기를 유통시킬 때, 많은 공력이 필요한데, 전신 주천(전신에 기를 돌림)을 해보신 분들은, 단전의 기운이 회음혈을 통과하여 독맥 상의 장강혈(기가 항문을 지나서 바로 마주 치는 혈)로 이어지기 전, 기가 다리의 기혈 경맥을 통과하여 발바닥의 용천혈까지 내려갔다가 용천혈에서 기운을 빨아들여 다시 다리를 거슬로 올라와 장강혈로 이어지는 것을 경험하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바꾸어 말하면먼저 다리와 발목그리고 발바닥의 용천혈이 뚫려 있지 않으면회음혈에서 장강혈로 이어지는 기혈 경맥의 유통이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용천혈>

                  용천혈.PNG 용천혈만으로는 기가 들락거리기에 너무 협소하다는 생각이 들어,  발바닥에서 기가 드낙거릴                                                          수 있는 지점을 폭넓게 표시한 것이니, 참고하시면 될 듯 합니다. 

 

 

따라서 단전에 모인 기가 충분히 숙성이 되어 곡골혈을 뚫고 내려오게 되면, 회음혈로 기를 보내면서 동시에, 다리의 사타구니와 허벅지, 무릎, 종아리, 발목, 발까지 기를 유통시켜줘야 하고 최종적으로 발바닥의 용천혈을 통해 기가 나가고 들어오는 느낌을 확인한 후, 다시 회음혈로 기를 유통시키는 순서를 지켜야 합니다.

 

치골부위나 다리의 기혈 경맥을 뚫을 때에는, 편하게 누워서 하는 것이 좋은데, 다리의 기혈 경맥을 뚫는 동안, 기가 유통되는 느낌들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이 때의 경험들은 후일 전신 주천을 하는 데 매우 유용하게 됩니다.

 

막힌 기혈 경맥을 뚫을 때에는, 앞서 말씀 드린, 여동빈이 태을금화종지에서 언급한 회광(빛을 모아 비춰줌) 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허벅지에서서부터 천천히 무릎 종아리 발목까지 기혈 경맥들을 유통시키면서 내려오는데, 기가 잘 막혀서 내려가지 않을 때에는 그 아래 쪽을 먼저 뚫어주면 기가 유통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 발목에서 기혈이 꽉 막혀서 한참을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경우에는 발이나 발바닥을 먼저 뚫어주면 한결 수월하게 발목에 기가 통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리 전체에 기를 유통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데, 최종적으로는, 회음혈 부위에서 장강혈까지 기를 보낼 때, 단 한번의 운기로 짧은 시간 안에 허벅지에서부터 무릎 종아리 발목의 기혈 경맥이 유통되고, 용천혈을 거쳐서 다시 회음혈-장강혈로 올라오는 수준까지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회음혈이 열린 이후에라야 비로소 화후가 가능해지고, 또 화후의 효과가  발바닥을 포함한 전신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화후는 주역참동계 전부를 묶어서 결론 맺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내단 수련에 있어서 거의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 화후가 제대로 이루어지면, 이미 내단 수련의 반은 뗀 것이나 다름없지 않나 여겨질 정도 입니다.  

 

참동계의 또 다른 주석서인 '참동계천유'에서는, 회음혈을 하나의 양기(陽氣)가 처음 동하는 지점(일양시생, 一陽始生)이라고 규정하면서, 단전의 기가 이 지점에 이르게 되면, “급히 불()을 펴내서 그에 응하여 반드시 맹렬하게 삶고 극도로 달구어 솥 가운에 있는 금액을 나오게 하여 위로 올라가게 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고, 또 독맥을 타고 머리 꼭대기까지 흘러 올라가는 기를 떡시루에서 김이 켜켜이 뚫고 올라가듯 산을 올라 꼭대기에 이르는 모습이다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회음혈에 머무른 기가 독맥을 타고 넘어오기 위해서는 장강혈(長强穴)이 큰 역할을 하게 되는데, 장강(長强)의 강()자는 튼튼하고 근력이 세다라는 의미가 있으며 힘쓰다, 단단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장강이라는 이름 만으로도 이 혈이 바로 솥을 거는 것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솥이 완성이 되게 되면, 그 때부터 단전으로부터 불을 꺼내서 펴내 불 조절을 해야 하는데, 솥 아래에서 불을 때면 솥 위의 물 가운에 양()기운(물을 끓일 때 생기는 같은 것으로 표현됨)이 튀어나와 위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 모습이 위 하도+낙서 그림의 우측, 사람의 등 뒤 쪽 보라색 화살표로 표시된 부분입니다.

 

이렇게 불을 지피면 물기운은 요양관혈 부분까지 끓어오르다가 김으로 화하여 명문혈에서 척추를 타고 위로 올라가는 기운과 식어서 차갑게 변하며 다시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기운으로 나뉘어지게 되는데, 그때 차갑게 변하여 떨어져 내리는 물기운이 단전의 더운 기운을 식혀주면서 단전의 기운을 연단시켜 주고, 거기서 나온 수증기의 일부가 다시 임맥을 타고 위로 올라옵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적으로 거치면서 단전 안의 더운 기운이 차츰 금단으로 뭉치게 되고, 단전을 연단시키며 임맥을 타고 위로 올라오는 기운은, 김시습이 적룡으로 표현하고 있는 기운으로, 이 적룡이 임맥을 타고 올라오게 되면 목을 타고 안면부에 진입하였을 때, 눈을 슬며시 내리 감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금빛 찬란한 빛이 어스름하게 보이게 되는데, 이는 단전으로부터 연단된 금단의 빛이 적룡의 등을 타고 위로 올라오면서 내는 빛으로, 여동빈의 태을금화종지에서 말하고 있는 황금꽃(금화)은 바로 이 빛이 모아져서 내는 빛입니다.

 

위 하도+낙서 그림의 왼쪽 낙서를 보면 신체 앞 부분을 의미하는3목(木)의 윗 부분에 4()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는 적룡이 신체 앞부분의 위로 뻗어 올라오는 임맥을 타고 주욱 올라와 머리 부분에 맻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면 맞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끝 부분에서 다시 한번 더 설명 드리겠습니다.

 

 

 

김시습이 "서방 백호를 북방의 흑호로 돌린다"고 언급한 독맥 유통과 관련하여서는, 참동계천유에서는, “화후의 기운이 미려혈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제 경험으로 보면, 실제 물기운의 일부가 김이 되어 올라가고, 또 일부는 아래로 떨어지는 일이 명문혈(命門穴) 부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명문(命門) 이라는 말의 의미는 명(命, 천명)으로 돌아가는 문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명을 노자가 말한 귀근복명의 명과도 같은 의미로 이해한다면, 귀근복명하기 위하여 마음을 비우고 그 배를 채운 연후에(허기심, 실기복) 비로소 명문혈에 이르러 하늘이 부여한 명으로 회귀하기 시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화후를 통해 등 뒤쪽의 독맥을 뚫기 위해서는, 척추 안 쪽 깊은 곳으로 물과 불이 조화된 화후의 기운을 끌어들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최초 관문인 명문혈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명문혈을 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역시 자세가 제일 중요합니다.

 

처음 설명 드린 것처럼 앉을 때 허벅지를 살짝 들어올리고 엉덩이의 꼭 필요한 부분만 땅에 닿도록 한 후 항문 주변과 장강혈을 거쳐 요유혈과 요양관혈에 긴장감을 가지고 허리를 바짝 곧추 세우고 시선을 명문혈에 집중을 하면 명문혈은 어렵지 않게 열리게 되어있습니다 .

 

등 부분의 독맥을 뚫어줄 때에는, 앉은 자세에서 하는 것도 좋고, 또 누워서 해도 되는데, 사실, 앉은 자세에서 등 쪽을 뚫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등쪽을 뚫는 일은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잠자기 전이나 아침에 일찍 눈을 떴을 때 편하게 누운 자세에서 전날 뚫었던 부분부터 다시 뚫어나가는 식으로 수련을 해나가면 큰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독맥을 유통시킬 때, 기운을 척추 안쪽으로 깊이 밀어 넣어 기를 켜켜이 올려 보내다 보면, 기가 어느 부분에서 꽉 막혀서 아예 꿈쩍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주변 갈비뼈에 심한 통증이 느껴지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는 독맥혈이 심하게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수련을 하다보면 독맥혈은 임맥혈에 비해서 상당히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고, 막힌 정도도 임맥과 비교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임맥혈과 독맥혈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기운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기 떄문에, 뚫기 힘든 독맥혈을 열어주기 위해서는 먼저 뚫기 쉬운 임맥혈을 열어주는 것이 임독백을 유통시키는 올바른 순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노자는 성인의 다스림은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 (虛其心, 實其腹 , 弱其志, 强其骨) 하여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를 내단 수련의 입장에서 이해한다면, 먼저 단전에 축기를 하고 임맥을 뚫을 때에는 마음을 텅 비우고 임맥의 긴장을 풀어서 자연스럽게 임맥을 타고 복부 아래쪽의 시원한 기운이 올라오도록 하여주고, 반대로 등 뒤의 독맥을 뚫을 때에는 척추 깊숙이 기를 집어넣어, 척추를 튼튼하게 연단해야 한다는 말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실제 척추 안쪽 깊이에서 기를 운행하다 보면, 막히는 일이 다반사인데, 이 막힌 기혈 경맥을 뚤어주기 위해서는 개인마다 다각도로 방법을 모색하는 지혜가 필요할 듯 합니다.

 

막힌 곳에 빛을 비추어주는 방법도 있고, 갈비뼈 쪽에서부터 기혈 경맥을 뚫고 들어와 막힌 곳과 이어주는 방법도 있고, 막힌 곳보다 훨씬 윗쪽에 있는 기혈 경맥을 뚫어줘 기가 빠져나갈 길을 미리 열어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하여 기가 등까지 운기가 되면, 그 다음에는 어깨와 팔, 팔목, 손바닥의 혈도 다리의 혈을 뚫었던 방식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뚫어줍니다.

 

그런데, 팔에 있는 기혈 경맥들은, 손과 손가락 등을 많이 사용하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많이 막히는 곳이기도 한데, 쉽게 뚫리기도 하지만 또 금새 막히곤 합니다. 목과 턱 부분을 뚫다 보면, 팔 쪽의 중요한 기혈 경맥이 덩달아 같이 열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처음부터 너무 완벽하게 뚫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질 필요까지는 없을 듯 합니다 .

 

 

 

온 몸의 모든 기혈 경맥을 뚫어줄 때에는, 동시에 단전의 기가 그만큼 고갈되기 때문에, 수시로 단전에 충분한 기를 보충해주는 일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 누워서 수련을 하더라도 주기적으로 정좌하여 한번씩 화후 수련을 해주어야 기의 유통도 빨라지고 부작용도 덜 일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단전 호흡으로부터 시작하여 뒷목 아래 등까지 기를 운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물론 사람마다 각기 차이는 있겠지만, 일상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넉넉잡아 1년 정도 잡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등까지 운기가 이루어지면, 그 다음에는 목, , 얼굴, 머리 부분을 뚫어줘야 하는데, 이 부분은, 전신주천보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공력도 많이 필요하고, 단전의 기도 빠르게 고갈되기 때문에, 수련과 함께 수시로 단전에 기를 보충해주면서 화후화 전신주천을 주기적으로 해주어야 합니다

 

한가지 중요한 점은, 뒷머리 쪽으로 올라온 기가 머리를 뚫을 때에는 하도+낙서 순환도 II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바로 직선으로 위로 뚫고 올라가야 합니다. 섣불리 머리 끝부분에서, 이게 머리 끝이구나 생각하고 기를 앞쪽을 돌린다든지 이마 쪽으로 내린다든지 하면, 오히려 백회가 막혀 버리게 됩니다.

 

기는 보통 내가 머리끝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보다 훨씬 더 높은 곳까지 유통이 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기를 올려주다보면, 나중에는 머리 끝이 찢어지는 통증과 함께 기가 폭포수처럼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비로소 머리의 한 기혈 경맥이 뚫린 것입니다.

 

머리를 뚫고 기가 빠져나가면,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빠져나간 기가 되돌아와 반드시 이마 쪽으로 쏟아져 내리게 되어 있습니다. 빠져나간 기가 이마로 쏟아져 내릴 때에는 시원한 물이 쏟아져내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그 이유는 머리 위의 백회혈은 회음혈과는 정반대 방향에 위치한 혈로, 회음혈이 우리 몸의 가장 차가운 냉기 1()가 응축되어 있는 곳이며 동시에 비로소 일양시생(一陽始生하나의 양기운이 생겨남)의 지점이라면, 백회혈은 하도에서 2,7()의 불기운이 주관하고 있는 곳이며 동시에 일음시생一陰始生, 하나의 음기운이 생겨남)의 지점이기도 합니다. 하도+낙서 순환도 II 를 보면 신체 하부에서는 회음혈의 1()가 중간 토()를 매개로 낙서의 9 ()을 끌어들여 솥을 세우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고, 백회혈에서는 하도의 7()가 중간 토() 를 매개로 맞은 편의 1 () 의 물기운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윗쪽으로 기를 끌어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저절로 아래쪽으로 찬 물이 쏟아져 내리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으로, 이 모든 것이 사람이 하늘로부터 기질지성과 본연지성을 동시에 부여 받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 것입니다.

 

 


내단 수련의 일차 단계의 완료는 머리 위의 백회(百會)를 뚫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백회라는 말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백가지 기혈 경맥이 모두 이곳에 모여 있다는 뜻이죠.

 

                              <얼굴 경혈도>

 

 얼굴 경혈도.PNG


 

위 그림은 얼굴에 퍼져 있는 혈자리를 표시한 것으로, 대충 100여개가 조금 넘습니다. 백회는 바로 이 얼굴 전체에 퍼져 있는 기혈 경맥이 모두 모인 자리로, 이 모든 기혈 경맥이 뚫려있지 않으면 백회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도+낙서 그림을 보더라도, 하도에 등장하는 숫자를 전부 합한 수 55와 낙서에 등장하는 숫자를 전부 합한 수 45를 더하면 숫자 100이 똑 떨어지는 것을 보면, 백회는 얼굴과 머리를 관통하는 모든 기혈 경맥이 모여있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하도가 의미하는 본연지성과 낙서가 의미하는 기질지성이 합하여지는 자리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얼굴 위의 모든 기혈 경맥은 임맥, 독맥과 상호 작용을 하기 때문 백회혈은 임맥과 독맥이 완전히 뚫은 상태에서만 비로소 열리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임맥은 은교혈에서 두 갈래로 갈려서 눈으로 들어가면서 임맥이 끝나고 맙니다.

 

                      <얼굴 위의 임맥>


얼굴 위의 임맥.PNG

나머지 얼굴 위에 있는 기혈 경맥 중, 눈 아래에 있는 혈자리와 얼굴과 머리 옆 부분, 귀 부분의 혈자리는 아래 목에서 올라오는 기혈 경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목과 턱 부분의 기혈 경맥들을 전부 뚫어주면 얼굴 부위의 혈자리들을 열어줄 수가 있게 됩니다

 

목과 턱 부분의 기혈 경맥을 뚫는 방법은, 눈을 지그시 감고 눈 빛을 모아 해당 지점을 비추어주면 됩니다. 이때 한 지점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폭넓게 여러 곳을 동시에 비춰주면 비춰줄수록 더 많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지그시 감은 두 눈에서 나오는 빛이 어느 정도 밝아져야 하는데, 두 눈 빛이 밝아지게 하기 위해서는 눈을 감고 눈동자를 움직이며 눈 주변의 어두운 부분을 비춰주기를 오래 지속하게 되면, 눈 주변에 기혈 경맥이 유통이 되면서 안구가 따끔거리기도 하고, 시원해지기도 하고, 또 눈 주변의 근육들이 실룩거리기도 하는 등의 반응이 나타나면서 차츰 그 빛이 밝아지게 됩니다.  

 

감은 두 눈으로부터 나오는 빛의 밝기가 밝을수록 수련 효과도 훨씬 빨라지기 때문에, 수시로 감은 두 눈  주변의 기혈 경맥을 유통시켜주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눈은 감고 있으되 의식이 단단히 깨어 있어야 눈 빛의 밝기도 밝아지게 됩니다.

 

눈 아래가 차츰 밝아지기 시작하면 이 밝음을 차츰 코 그리고 , , , 가슴 부위로 확대시켜 나가야 합니다.

 

임맥을 타고 올라오다 가슴 부위에서 꽉 막혀 올라오지 못하는 적룡을 끌어올려 삼키는 방법으로 이만한 방법이 없는데,  미미하고 따뜻한 날숨을 임맥을 거슬러 단전까지 한번에 내쉬며 내려가는 방법을 병행하면 훨씬 더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임맥이 유통이 되면, 적룡이 단전에서 연단된 금단의 금빛 찬란한 기운을 끌고 올라오면서 임맥이 뚫린 부분까지 환하게 빛을 내는데, 처음에는 그 빛이 위로 오르지 못하고 목 부위에 정체되어 있게 됩니다. 그 이유는 바로 목, 턱 부분이 심하게 막혀 있기 때문인데, 따뜻한 날숨과 두 눈의 빛을 합하여 승읍혈, 은교혈, 승장혈에서 목의 정 가운데에 있는 염천혈과 그 부위를 거슬러 내려가며 비춰주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임맥이 열리면서, 임맥을 타고 두 눈으로 흘러 들어간 금빛은 두 눈을 더 밝게 만들어서, 수련 효과를 배가 시키는 작용을 하게 됩니다.

 

목에서 턱으로 이어지는 임맥에 빛을 비춰주는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정말 힘들게 무언가 목에서부터 시작하여 턱 위로 꼬물꼬물 거리며 올라오는 기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턱에서 입 주위 뺨 주변에 빛을 내리쬐어 주면, 턱을 타고 올라오 기운이 차츰 얼굴 쪽으로 번지면서 동시에 임맥을 타고 적룡이 끌고 온 금단의 빛이 따라 올라오며 눈 아래가 환하게 빛을 발하게 됩니다.

 

 

저는 단 수련법 도입 부분에서, 권근의 두 개의 시. 기우설과 주옹설 중에서 기우설이 바로 내단 수련 과정에서 임맥을 타고 올라오는 적룡을 다루는 수련법을 언급한 것임을 잠깐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단 수련법2 참조)

 

그런데, 김시습이 수락산에서 내단 수련을 하면서 지은 것으로 보이는 시 학랑소(謔浪笑)는 권근의 기우설을 연상시키는 내용에 더하여, 임맥을 유통시키는 구체적이 방법론이 적시되어 있어 보입니다

 

우선 그의 시 학랑소를 먼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我會也我會也(아회야아회야) : 나는 안다. 나는 안다.. 

拍手呵呵笑一場((박수가가소일장): 한바탕 꿈 같은 덧없는 일에, 손바닥 치며 소리 내어 크게 웃어본다
古今賢達俱亡羊(
고금현달구망양) : 고금의 현달한 사람들 모두가 본질을 잃으니
不如結茅淸溪傍(
불여결모청계방) : 맑은 시내 흐르는 곳에 초가집 짓고 사는 것만 못하도다
畏途側足令人忙(
외도측족령인망):발 닿는 곳 밖의 천길 낭떠러지 땅은 마음만 분주하게 할 뿐 

不如安坐曝朝陽(불여안좌폭조양) : 편히 앉아서 아침 햇볕 쪼이는 것만 못하구나
百年熟黃梁(
백년숙황량) : 인생 백년 고작 기장밥 익는 시간에 불과

談笑防龜桑(담소방구상) : 담소를 나눌 때는 거북과 뽕나무처럼 말함을 삼가야 하리라

百了千當(백료천당) : 백 가지 일 마치면, 그 다음에 천 가지 일이 생겨나리니, 
不如坐忘(
부여좌망) : 가만히 앉아서 마음을 텅 비게 하는 것만 못하리라

碧山峨峨(벽산아아) : 푸른 산 높고
碧澗泱泱(
벽간앙앙) : 푸른 개울물 콸콸 흐른다
自歌自舞(
자가자무) : 스스로 노래 부르고, 춤을 추니
憂樂兩忘(
우락양망) : 근심과 즐거움 모두 잊혀진다

或偃或臥(혹언혹와) : 혹 쓰러지고 혹 눕고
或行或坐(
혹행혹좌) : 혹 걷고 혹은 앉아있고
或拾墮樵(
혹습타초) : 혹 줍고 혹은 베며
或摘甜蓏(
혹적첨라) : 혹은 열매를 따는데 
一領布衫(
일령포삼) : 한 벌 베 적삼은 
半眉裸臂(
반미라비) : 반쯤 벗겨진 팔뚝에 드러난다
骨癯麤筋瘰野(
골구추근라야) : 뼈는 약하고 힘줄은 추하고 옴딱지 붙어있다
冠粗粗纓下(
관조조영하타) : 갓은 촌스럽고 갓끈은 늘어져있고
眼底不見人與我(
안저부견인여아) : 눈 아래에는 남과 내가 보이지 않는다
步月長歌腰裊灘(
여아보월장가요뇨탄) : 달따라 거길며 길게 노래 부르니 허리가 일렁이고
笑入煙蘿洞雲鎖(
탄소입연라동운쇄) : 웃으며, 안개 낀 울타리 안, 구름으로 빗장 채워진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권근의 기우설이나 김시습의 학랑소는, 산수에 파묻혀 사는 은자의 얽매임 없는 여유자적한  삶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만, 김시습의 시는 권근의 시에서 보이지 않는, 노자식 도()의 표현인 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하며 기우설의 소를 대체하고 있다는 점과, 장자적 색채가 강하게 풍기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특히 위 시 중간쯤 “가만히 앉아서 마음을 텅 비게 함만 못하리라” 뒷 부분부터는 내단 수련의 내면의 경지를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여기에 내단 수련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방법론이 엿보이고 있습니다.

 

시 앞부분의 맑은 시냇물 흐르는 곳에 초가집 짓고 살면서, 편히 앉아서 아침 햇볕 쪼이는 일의 아침 햇볕 쪼이는 일(曝朝陽) 마치 여동빈이 태을금화종지에서 언급하고 있는 회광(빛을 모아 비춤”)을 연상하게 하는데, 여동빈은 회광 즉, 특정한 기혈 경맥에, 두 눈으로부터 나오는 빛을 쏘아주는 방법을 통해 기혈 경맥에 있는 음기(묵은 때)를 순양한 기운으로 바꾸어줄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신주천(온 몸으로 기를 운행하는 일) 수련을 해보신 분들은 대부분 몸에 기가 유통되는 느낌을 가지고 계실 텐데, 테스트 삼아 기 흐름이 비교적 원활한 팔 위의 한 지점을 타겟으로 삼아, 눈을 감고 강하게 두 눈의 빛을 쏘아 마음의 눈빛으로 한 지점을  집중적으로 비추어주면얼마 지나지 않아시선이 닿는 부분이 따끔거리면서 그 주변 언저리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듯한 느낌, 혹은 그곳과 기맥이 연결되어 있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근육이 실룩거리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는 빛을 비추는 일로 인해 막혀 있던 팔의 기맥이 유통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처음에는 아무리 빛을 비추어도 전혀 변화가 없던 장소라 할지라도, 그렇게 한참을 쏘이고 또 쏘이고 하다 보면, 반드시 막힌 곳이 열리면서 찌릿하고 기가 소통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소통된 기는 잠깐 뻗어나가는 듯 하다 또 다른 곳에서 막힌 곳을 만나면, 정체되게 됩니다. 그러면 역시 새롭게 정체된 부분에 강하게 두 눈의 시선을 쏘아 줍니다.

 

부분 부분마다 기의 유통 과정 상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어떤 부분은 즉시 기가 유통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한참 소식이 없어 포기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을 때, 갑자기 막혔던 부분의 혈이 뚫리면서 기가 폭포수처럼 통과해 지나가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두 눈의 빛을 강하게 쏘아 협소한 한 지점에 비춰주는 일과, 김시습이 언급하고 있는 아침 햇볕을 쐬어주는 일과는 차이는, 위 시 학랑소에서, ‘발 닿는 곳 밖의 천길 낭떠러지 땅은 마음만 분주하게 할 뿐(畏途側足令人忙) , 바로 그 아래 구절인 '편히 앉아서 아침 햇볕 쪼이는 것만 못하구나'(不如安坐曝朝陽)의 대비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발 닿는 곳 밖의 천길 낭떠러지 땅이라는 말은 장자 외물편에 나오는 측족(側足)’에 관한 내용을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사람들이 걸을 때 쓰이는 땅은 고작 발로 밟는 부분일 뿐이라 하여 발 크기에 맞추어 발자국만큼의 땅만 남겨놓고 나머지 부분은 천길 낭떠러지에 이르도록 깎아낸다면 그런 길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길이라는 의미로, 쓸모없는 것의 쓰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이 장자의 논리를 협소한 의미의 회광의 원리에 그대로 대입해보면, 기를 유통시키고 싶은 어떤 특정한 지점에만 빛을 쏘아주면, 그곳의 기가 순간적으로 소통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곳의 묵은 때(음기)가 강한 빛에 밀려 옆으로 비껴나가 옆의 기맥 기혈이 막히게 되는 결과를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편하게 햇볕을 쪼이는 방법은, 특정한 한 지점에만 강한 빛을 모아 쏘아 주는 방법이 아니라 한 순간에 전체적인 영역에 걸쳐 골고

루 빛을 분산하여 내리 쬐어준다는 것이죠.  




이 두 빛의 차이점을 논하기 전에, 먼저 왜 김시습과 여동빈은 내단 수련의 방법론으로 똑같이 빛을 언급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할 듯 합니다.

 

그것은 이 두 사람이 똑같이 내단 수련에서 호흡을 언급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듯 한데, 이 호흡은 사실은 사람이 생기기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천지 대자연의 참다운 숨을 사람이 그대로 부여 받아 천지 자연처럼 호흡을 하고 있는 것으로 김시습은, 호흡은 천하의 정기를 훔쳐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동빈은 이 숨이 천지 대자연이 숨쉬는 참다운 숨과 같은 것은 아니지만, 결국 이 참다운 숨이라는 것도 입과 코로 들락거리는 호흡에 붙어있다고 합니다.

 

이 두 사람의 말을 합해 보면, 사람이 호흡을 통해, 호흡에 붙어 있는 천지 대자연의 숨을 끌어들여 단전에 불어넣는 것이 바로 천지 자연의 정기를 훔쳐내는 방법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 재미있는 이야기이지만, 구약 성서에도 보면, 하느님이 이 천지 자연의 숨을 사람에게 불어넣어서 사람이 생명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죠.

 

창세기 2:7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라고 하는 말씀에 나오는 생기란 히브리어로 니쉬마트 하임이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생명들의 호흡’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 안에 생명들의 호흡을 불어넣어  ‘산 존재를 만들었다는 것이죠.

 

이를 내단 수련의 입장에서 해석해본다면, 하느님이 사람을 창조한 것도, 천지 대자연의 참다운 숨을 사람에게 불어넣어 줌으로써 비로서 사람이 그 호흡을 얻어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천지 자연의 정기가 오로지 사람의 코와 입으로 들락거리는 숨에만 붙어있는 것은 아니겠죠, 사람이 코와 입에 천지 자연의 정기가 붙어있다면 같은 원리로 당연히 사람의 눈에도 천지 자연의 정기가 붙어 있어야겠죠. 그것이 바로 사람의 두 눈으로부터 나오는 빛입니다.

 

비록 두 눈으로부터 나오는 빛이 해와 달의 밝음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해와 달의 밝음이라는 것도, 천지 자연의 명을 부여 받은 사람의 두 눈에 붙어 있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내단 수련이 천하의 정기를 훔치는 것이라고 본 김시습의 입장에서 볼 때, 호흡 뿐 아니라 이 두 눈에 붙어 있는 밝음 역시 훔쳐오는 것이 가능한 천지 자연의 정기 중 하나가 되게 됩니다.

 

천하의 정기를 입과 코로 훔쳐올 때, 호흡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게 미미하게 끊어질 듯 하면서 조용히 단전에 날숨을 내쉬는 이유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하는 일들이 오히려 오감을 작동시켜 거기서부터 일리만수(一理萬殊,  한가지가 만가지로 뻗어나감)의 원리에 의해 마음이 번잡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움이 번잡해지면 그때부터는 기를 모아 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천지 자연에게 기를 빼앗기게 되고 말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천지의 밝음을 훔쳐오는 데, 눈을 뜬 상태에서는 오감이 작동하여 만가지 번잡스러운 생각이 그치지를 않기 때문에, 당연히 눈을 감고 조용히 마음의 눈으로 하늘의 밝음을 훔쳐올 수 밖에 없습니다

 

여동빈은 이를 회광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김시습은 아침 햇볕을 쬔다고 비유하였는데, 아침 햇볕을 쬔다는 의미로 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폭() 자는, 어떤 협소한 특정 부분을 타겟으로 빛을 강하게 모아준다기 보다는동시에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전체적으로 고루  빛을 분산시켜 비추어 준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일단, 아침 햇살은 일년으로 치자면, 봄볕과 같은 것으로, 아침 햇살이나 따사로운 봄볕은 만물이 태동하는 시기인 봄, 혹은 아침의 빛으로, 한 낮, 혹은 여름까지도 한참 더 빛을 발할 수 있는 양기(陽氣)를 가득 품은 빛에 해당합니다.

 

반면, 한낮의 (한 여름)의 타는 듯한 뜨거운 빛은 빛의 밝기가 점점 줄어들기 직전의 강렬한 빛이라는 의미에서, ‘일음시생(一陰始生음기가 비로소 생겨남)’하는 빛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강하지만 쇠퇴하기 시작하는 빛을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창창하게 피어날 일만 남아있는 한 점의 음기도 없는 양기를 가득 품은 봄의 따사로운 찬란한 빛과는 분명 다릅니다.  

 

                                                                       <우리나라의 봄과 여름>


지구의 봄과 여름.PNG


 

 

 

만물이 태동하는 시기의 아침 햇볕은, 역학(易學)에서는 봄의 햇볕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순양(純陽)한 기운으로 차고 넘치는 햇볕으로서, 음기가 생겨나기 시작한 정오의 뜨거운 빛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순양(純陽)한 빛으로, 몸의 기혈 경맥을 막고 있는 묵은 때(음기)를 벗겨내는 것은, 음기가 포함된 강렬한 빛으로 묵은 때(음기)를 벗겨내는 것과는 엄연히 차이가 있습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정오의 뜨거운 태양과 같은 빛으로 음기를 벗겨내는 것은, 음기가 섞인 기운으로 음기를 벗겨내는 것이니 아무리 해도 음기를 완전히 벗겨낼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런데 순양(純陽)한 기운인 아침 햇볕을 쪼이다 보면, 여기에 음기가 머무를 자리가 없게 되죠.

  



위 시 마지막 부분을 보면, "눈 아래에 나와 네가 보이지 않는다"(眼底不見人與我)라고 말하고 있는데이 구절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랑소의 다른 구절들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푸른 산 높고, 푸른 개울물 콸콸 흐른다”의 의미는 단전 수련의 깊은 경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실제 단전 안의 기를 채우는 공간을 작게 하면 작게 할수록 그 깊이가 깊어지고, 깊으면 깊을수록 많은 기를 채울 수 있는데, 작은 공간 안에 많은 기를 채우면 채울수록 응축된 기의 힘이 강하게 요동치게 됩니다.

 

스스로 노래 부르고, 춤을 추니 근심과 즐거움 모두 잊혀진다.”라는 구절은  영기’((迎氣 기를 맞아들임)를 통해, 기가 내 몸에 일으키는 변화와 움직임을 느끼고, 그러다 보면 어느 새 마음의 온갖 잡사가 다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혹 쓰러지고 혹 눕고, 혹 걷다가 혹은 앉아있고 혹 줍고 혹은 베며 혹은 열매를 딴다 구절과 한 벌 베 적삼은 반쯤 벗겨진 팔뚝에 드러난다. 뼈는 약하고 힘줄은 추하고 옴딱지 붙어있고 갓은 촌스럽고 갓끈은 늘어져는 인위적으로 꾸미지 않은 통나무처럼 질박하여 아무런 쓰일 곳이 없어 천지가 부릴 수 없는, 나와 기가 합일된 물아일체의 경지를 표현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런데 눈 아래쪽은 바로 임맥의 기가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오는 지점이기도 한데, 어느 특정한 곳을 콕 집어서 빛을 쏘아주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고 눈 아래를 아침 햇볕 쐬어주듯 비춰준다는 것은, 바로 임맥이 소통하는 눈 아래 지점에서부터 시선이 미치는 전 영역에 걸쳐 빛을 내리 쬐어주고 있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임맥이 소통되지 못하는 것은 그곳에 음기가 채워져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도교의 내단 수련에서는 천지 자연으로부터 홈쳐 온 호흡과 빛에 의해 정화되어 동화되지 못한 기운을 음기로 통칭하고 있는데, 이 음기는 만병의 근원이자 생노병사의 근원이 됩니다. 빛을 쏘아주어서 이 음기를 양기로 바꾸어주게 되면, 막혀 있던 임맥이 뚫려지면서, 자연스레 수승화강이 일어나게 될 뿐 아니라, 음기가 양기에 의해 차츰 불려서 없어지게 되니, 내 몸이 점점 순수한 양기로만 가득 차 넘쳐 신선에 가까워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임맥을 통하여 올라온 적룡의 금빛 기운이 턱을 타고 올라와 은교혈을 지나 양 뺨을 타고 눈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다음에는, 두 눈으로 들어간 적룡의 금빛을 두 눈의 밝음이 모이는 천목혈(天目穴)로 끌어올립니다.

 

                     <독맥 상의 천목혈>


얼굴 위의 독맥.PNG

태을금화종지 하늘의 중심편을 보면 사람의 두 눈에 있는 빛이 저절로 두 눈썹 사이의 천목(天目)이라는 편편한 곳에 모이는데, 두 눈과 마음의 세 빛이 돌아와 모여서 들고 나는 창문이 되는 곳이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천목혈(天目)의 의미는 하늘의 눈, 즉 하늘의 밝음이라는 뜻으로 두 눈의 빛뿐 아니라 마음의 빛이 같이 돌아와 모여드는 곳인데, 그 마음의 빛이란 다름 아닌 임맥을 타고 올라 온 적룡이 끌고 온 빛을 말합니다.   

 

이렇게 두 눈의 밝음이 모이는 천목혈에 적룡의 빛이 같이 어우러지게 되면, 여기서  빛나는 빛이 마치 햇빛을 보는 듯이 눈부시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굴의 경혈 지도를 보면 눈 아래의 혈이나 머리 옆의 혈들은 목과 턱, 임맥과 연결되어 있는데, 이마 위의 혈자리들은 독맥하고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독맥 상의 혈자리들을 전부 뚫어주어야 백회가 열리는데, 이마에서 백회에 이르는 혈자리는 날숨이 이르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를 뚫는 방법은 천목혈에 모인 빛으로 비춰주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천목혈에 모인 이 빛은 약간 덩어리진 기운이 뭉친 듯한 느낌이 드는 기운인데, 이 기운을 끌어서 미처 뚫지 못한 혈들과 백회를 뚫어주어야 합니다.

 

그 방법은, 위 그림에서와 같이 독맥이 끝나는 지점인 은교혈에 빛을 모아 비춘 후, 독맥을 거스르며 코끝의 수려혈 그리고 코 중앙을 타고 천목혈에서 이마에서 백회까지 주욱 끌어올려줘야 합니다.

 

임맥을 뚫어주기 위해 코의 날숨과 눈의 빛을 모아 임맥의 끝 부분(은교혈)으로부터 거슬러 아래 단전으로 내려 보내는 것처럼, 독맥을 뚫어주기 위해서는, 이처럼 독맥의 끝부분인 은교혈로부터 빛을 모아 백회로 거슬러 올려주는 것입니다

 

천목혈에 모인 두 눈의 빛과 적룡을 타고 올라 온 빛을 합한 밝은 기운을 코 끝인 소료혈에서 모아 천천히 천목혈까지 끌어올리다보면, 상당한 열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가슴을 타고 올라온 시원한 기운이 코와 눈 부위를 통과하면서 순간적으로 덥혀지기 떄문입니다.

 

열감에 구애받지 말고, 곧바로 이 기운을 위로 끌어올려 이마에서 백회까지 끌어올려줍니다. 그러면 대체적으로 얼굴 앞 뒷면 전체의 혈들이 모두 긴장된 반응을 보이는데, 이마와 머리의 혈들이 뚫리면서 순간 순간 따끔거리거나 시원한 일들이 반복이 됩니다.

 

천목혈에 뭉친 더운 기운을 위로 끌어올려줄 때는, 기가 위로 역상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주의를 요하는 부분인데, 발바닥의 용천혈과 발목 부위에서 같은 압력의 기를 유통시켜줘야, 기가 단전에서 중립을 이루어 위로 쏠리는 일이 없습니다.

 

 

백회혈은 하도의 2,7 ()가 자리한 곳으로, 하루로 치면 정오, 일년으로 치면 한여름에 해당하여  하나의 음기운이 생겨나는 자리를 말합니다.

 

기가 백회에 이르게 되면 하도의 맞은 편의 1()를 끌어들여 이 찬 기운으로 천목혈의 더운 기운을 식히면서 마치 단전에서 기가 연단이 되듯, 천목혈에서 올라간 더운 기가 차갑게 연단이 됩니다.  

 

백회혈에서 찬 기운을 맞아 연단이 된 밝은 기운은 무게가 무거워지면서 다시 천목혈로 내려 보내지게 되는데, 백회를 완전히 뚫기 위해 이와 같은 일을 여러번 반복하다보면  이 빛이 천목혈에서 점점 더 강하게 덩어리로 엉기게 됩니다.

 

이 덩어리 진 기운이 바로 결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김시습은 그의 용호론에서 결태 이후 백일이 지난 후 공이 신령스러워지고 십개월 후에는 태가 원만해지고, 1년이 지나면 소성하고, 2년이 지나면 대성하며 이와 같이 하여 구년째에 이르러서야 9변을 겪은 뒤 음이 소멸되고 양이 순화하여 공이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천목혈에 덩어리져 밝게 빛나는 이 빛은 한 점의 음기가 없는 순양한 찬란한 봄볕, 혹은 아침 햇볕으로 표현이 될 수 있는 빛인데, 전통적으로 도교에서는 이 빛을 달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태을금화종지에서는 이 빛은 해의 빛도 아닌 달의 빛도 아닌 해와 달의 빛이 합해진 빛이라고 설명합니다. 해 가운데에 품어져 있는 어두운 부분이 참다운 달의 속 알맹이고, 달 가운데에 있는 흰 부분이 참다운 해의 빛이라는 것이죠. 그것을 역학(易學)으로 이해하면, 해는 이괘(離卦) 로 상징되는데 바깥 쪽의 두 괘는 밝은 양괘를 나타내고 있지만, 속에는 음괘를 품고 있습니다. 반면 달은 감괘(坎卦)로 상징되는데, 겉은 음괘에 둘러싸여 있지만, 속은 밝고 부드러운 양괘를 품고 있죠.

 

그런데, 천목혈에서 결태되어 발산되는 빛은, 해와 달을 더한 빛을 백회혈의 냉각수로 여러번 연단한  빛으로 해의 빛보다는 오히려 달 빛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태을금화종지에서는 천목혈에 결태가 이루어지게 되면, 밝은 달이 하늘 가운데에 떠 있고, 온 누리가 모두 함께 빛나고 밝은 경계임을 깨닫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경지가 되면 뜻으로 이 빛을 이끌고 심장의 뒷 부분이자 등뼈의 양옆에 나란히 있는 관문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지점으로 끌어 내리면 이 빛이 따라오게 되는데, 그러면 하늘의 중심이 저절로 훤하게 열린다고 설명합니다.

 

또 "등뼈에 나란히 있는 두 개의 관문이라는 것은, 말하기 어려운 것으로, 모든 것을 잊고  마음을 텅 비게 하고 번뇌를 끊으며, 아무 것도 없음에로 돌아가는 경우에만 이 관문을 보게 되고 또한 뚫고 지나갈 수 있다."고 합니다. .

 

그런데, 김시습의 학랑소를 보면, 태을금화종지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 내단 수련의 마지막 단계의 모습이 엿보이고 있습니다.

 

眼底不見人與我(안저부견인여아) : 눈 아래에는 남과 내가 보이지 않는다
步月長歌腰裊灘(
여아보월장가요뇨탄) : 달따라 거길며 길게 노래 부르니 허리에 잔 파도가 일렁인다.

笑入煙蘿洞雲鎖(탄소입연라동운쇄) : 웃으며, 안개 낀 울타리 안, 구름으로 빗장 채워진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김시습은 눈 아래를 그저 무심히 바라보면  된다고 하는데, 임맥이 열려 있으면 빛은 자동적으로 아래로 투과됩니다. 이 빛의 밝음을 심장의 뒷 부분이자 등뼈의 양 옆까지 끌고 내려온다는 것은, 그 부분까지 천목혈의 빛이 강하게 투과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될 듯 합니다.

 

                    <천목혈과 마음의 중앙>


천목혈과 마음.PNG

 

 

 

이를 좀 더 시적(詩的)으로 표현하면, 호수에 밝게 비치는 달을 보고 마음을 빼앗겨 달이 떠 있는 물 속으로 들어가 빠져 죽은 시선 이태백을 연상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호수처럼 잔잔하고 고요한 마음에 하늘의 중심에서 훤하게 빛나는 빛이 그대로 투영이 되어, 저 달이 호수에 떠있는 달인지 하늘에 떠있는 달인지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지에 오르게 된다는 것이죠.

 

학랑소의 "달을 밟는다"(步月)는 표현은 천목혈의 빛나는 빛을 좇는다는 뜻으로, "길게 노래 부른다"(長歌)는 표현은 긴 날숨을 임맥을 거슬러 단전까지 내려 보내는 일을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수련을 해보면, 빛을 가슴 깊은 곳까지 내려 쪼여주기 위해서는 그만큼 마음이 비어 있어야 합니다. 채우기 위해서는 비워져야 한다는 노자의 격언이 여기에도 똑같이 적용이 되고 있는 것이죠. 마음 깊숙한 곳에 빛을 쪼이면서 동시에 긴 날숨을 내쉬며 가슴을 통과하여 아래로 내려 보내다 보면, 늑골 아래 쪽의 허리와 복부 전체에 걸쳐 미세한 실룩거림이 일어나게 되는데, 김시습이 허리에 잔 파도가 일렁인다고 표현한 부분이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또 마음이 비워지면 비워질수록, 빛과 날숨이 가슴 깊은 곳을 통과하게 되는데, 그 모습을 안개 낀 울타리 안, 구름으로 가리워진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고 표현한 듯 합니다.

 




아침 햇볕을 쏘이는 일은, 하늘의 중심(천목혈) 에서 빛나는 빛에 초점을 맞추고 쉬지 않고 계속 쏟아 부어주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음기가 생겨날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 이렇게 오랫동안 빛을 쏟아 부어주면, 마음의 음한 찌꺼기들이 모조리 불로 불려서 잡된 것이 하나 없이 순수한 양으로 이루어진 상태로 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임맥과 독맥이 교차하는 지점. 마음의 중앙. 이곳을 텅 비게 만들면, 마치 수레바퀴 살이 중앙의 빈 공간에 연결이 되면서 비로소 운행이 되는 것처럼, 밝게 빛나는 천목혈의 빛이 그대로 마음에 투과되면서 아침 햇볕이 온 몸으로 두루 퍼지게 됩니다.

 

태을금화종지에서는 온 몸에 황금 꽃의 빛과 밝음이 꽉 차게 되면, 일곱자 밖에 안 되는 고깃덩어리 몸이 금과 보배 아님이 없게 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비해 김시습은 아침 햇볕을 쏘여주면 자신의 몸이 투박하고 질박한 통나무로 돌아간다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두 사람의 차이라면 차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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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단 수련에 관한 다양한 문헌들은, 각기 저자가 겪은 체험과 이를 표현하는 표현법의 차이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사람에 따라 느끼고 깨닫는 바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조선시대 수련 도교에서 주역참동계가 단학의 비조로 일컬어지며 많은 수련자들 사이에 보편적으로 읽혀졌던 것은, 역학의 원칙에 근거하여 수련법을 풀어냈기 때문에, 개인적인 체험이나 표현방식의 차이로 인한 왜곡이 일어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던 듯 합니다.  

 

도교 사상은, 지금까지 숱하게 많은 문헌들이 존재해왔고, 또 앞으로 내단 수련에 관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면, 더 좋은 수련방법들이 쏟아져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만,. 제가 위에서 설명드린 하도 + 낙서의 원리의 틀에 맞춰 단 수련법을 이해한다면개인적인 체험으로 인한 편차나 편견, 표현 방식의 차이로 인해  도교의 내단 수련의 본질을 훼손시키는 일이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단 수련법 내용과 관련하여 의심나는 부분이 있으신 분들은 제 메일(yoonkyungjong@gmail.com)로 간략하게 내용 정리해서 보내주시면, 검토하고 답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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